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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박수치는 고발사주 의혹 보도, 언론중재법 있어도 가능할까?

입력
2021.09.09 09:00
수정
2021.09.09 09:4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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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안 적용해 보니]
윤석열 요구에 기사 열람 차단,?
손준성 검사, 5배 손배 청구 가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을 위해 당대표실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회동을 위해 당대표실로 향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 정치권을 강타한 검찰발 '고발 사주' 의혹은 인터넷매체 '뉴스버스'의 특종 보도에서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언론사들의 후속 보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2. 민주당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아버지 농지법 위반 의혹에 대한 여러 언론의 탐사 보도도 격하게 반겼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의원 매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보좌관이었다는 보도를 공개적으로 인용하기도 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 보도에 찬사를 보내는 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이러니다. 민주당의 공언대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권력의 비위를 들추는 고발·탐사 보도는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개정안이 시행되는 경우를 가정해 고발 사주 의혹과 윤 의원 아버지 의혹 보도가 제대로 될 수 있는지를 짚어 봤다.

보도 나오자마자 '기사 게재' 차단 가능

민주당 개정안은 기사의 열람·차단 청구권을 신설했다. 고발 사주 의혹 보도의 당사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준성 검사,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은 기사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문제 삼아 언론사와 포털에 '기사 차단'을 요청할 수 있다. 핵심 보도 내용의 진위와 상관 없이 보도를 사실상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권력의 언론 통제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고위공직자는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했다. 열람·차단 청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개정안엔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으로 여론 형성 등에 기여하는 경우는 차단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해석의 문제이다.

개정안은 언론사에 정정 보도 기사의 크기와 분량도 강제한다. '원래 보도의 절반 이상'으로 명시돼 있다. 기사 전체가 아닌 내용 중 극히 일부에 오류가 있다 해도 정정보도 결정이 나면 따라야 한다. 큰 틀에서는 진실이라도 사소한 오류 때문에 정정 보도를 크게 실어야 한다면, 언론사는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손준성과 윤희숙 부친, 언론사에 5배 손배 청구 가능

고발 사주 보도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는 민주당 개정안이 규정하는 고위 공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언론중재법이 개정된 상태였다면,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하는 모든 언론사에 대해 5배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윤 의원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고위 공직자의 가족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 제한을 받지 않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서 고발 문서를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손준성 검사가 7일 오전 대구고검에 출근했다. 대구=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서 고발 문서를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손준성 검사가 7일 오전 대구고검에 출근했다. 대구=뉴스1

일단 소송이 걸리면 의혹 관련 후속 보도는 어려워진다. 개정안은 '가짜 뉴스'의 고의·중과실 여부를 추정할 수 있는 요건 중 하나로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든다.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 자체로 고의 내지 중과실로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의·중과실의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넘긴 대목도 문제다. 언론사는 고의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제보자 혹은 윤 의원 아버지가 농지 구입 이후 직접 경작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제보자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언론사가 소송서 이겨도 이미 대선 끝

민주당은 '공익을 위한 보도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면책 조항이 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는 '재판 결과'에 대한 것일 뿐, 소송 청구는 공익 보도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추가 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이다.

한국은 미국 등 표현의 자유를 엄격하게 보호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전략적 봉쇄소송의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를 갖추지 않았다. 예컨대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가 소송에 걸린다고 하면, 대법원 판결까지는 최소 1, 2년이 걸린다. 언론사가 승소한다고 해도 내년 3월 대선은 이미 끝난 뒤일 것이다. 대선후보를 비롯한 권력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 기능이 철저히 통제된다는 얘기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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