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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실려온 의사 "병상에 누우니 비로소 환자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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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둘러쌌다. 내려다보니 발목 전체가 탈구되어 발가락이 3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릿한 통증과 함께 과호흡이 시작됐다.
순간 인턴, 공중보건의사 생활을 하며 만났던 수많은 과호흡 환자들이 떠올랐다. 사연은 다양했다. 고부 갈등부터 승객으로부터 모진 욕을 들었던 젊은 선원까지. 아무리 사람 멘털이 약하다지만 그만한 일로 과호흡까지 하나 싶기도 했고, 특별한 처치를 요하지 않는 과호흡 환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었다. 환자 손을 잡고 “숨을 천천히 쉬실게요. 하나, 둘” 하는 게 다였으니까. 내가 환자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그런 생각은 사실 해본 적 없다. 그냥 일이지 그들을 정말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제 내가 환자다. 옆에 앉아 내 손을 꽉 쥔 20대 여성이 말한다. “숨 그렇기 쉬지 마세요. 천천히.” 그 말이 묘하게 힘이 되는 거 같기도 했다. 119 구급차가 곧 도착했고 나는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렇게 나의 두 달 병상 생활이 시작됐다.
환자들을 보기만 하다 내가 병상에 누우니 기가 막혔다. 다음날 수술이 잡혔고, 수많은 수액을 맞고, 채혈을 포함한 검사들이 시작됐다. 두 발로 설 수조차 없는 터라 휠체어 신세는 당연했다. 그 와중에 경찰은 피해자 진술서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재촉했다. 난생처음 척추마취하고 수술을 받으려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마취도 안전하고 수술도 안전합니다만 모든 수술엔 위험성이 따릅니다. 합병증은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과거 나의 이런 설명을 들은 환자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내가 당해보니 알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기도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나를 치료하는 의사가 부디 좋은 컨디션에서 실수가 없기를. 병상에 눕고 나서야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형외과 수술을 마치고 화상 치료를 위해 성형외과로 전과됐다. 나의 스승이자 선배이신 교수님이 계신 안산으로 왔다. 피부이식까진 아니지만 가피절제술 정도는 필요하다고 하셨다. 국소마취하고 죽은 조직을 도려내는 비교적 간단한, 5분이면 끝나는 수술이었다. 더구나 내 전문 분야였다. 후배이자 당시 치프 레지던트였던 전공의가 국소마취 주사기를 들고 말했다.
“선생님. 조금만 참으세요.”
맨정신에 국소마취를 받아야 하니 공포감이 극에 달했다.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그냥 안해도 낫지 않을까? 제발. 너무 아플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픈데 주사까지 놓으면 얼마나 아프겠어. 니가 환자 맘을 아니.”
하루에 많으면 수십 명에게 주사를 온몸에 놓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나는 병상에 눕자 10살짜리 아이처럼 주사를 맞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굴었다.
우여곡절 끝에 퇴원 후 목발 신세를 지게 됐다. 유튜브에서 목발 잡는 법부터 골절 수술 후 재활까지, 경험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검색했다.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이제 목발을 놓고 걸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 앞 공터에서 목발을 한 손에 꼭 쥐고 떨리는 마음으로 두 번째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조금 눈물도 났던 것 같다. 두 발로 땅을 딛는 일이 이토록 감동적인 것이라니! 조금 민망했지만 골절 환우회 카페까지 가입해 나의 재활기를 공유하고 다른 환자의 재활 일기를 참고했다. 물론 모두 의학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환자들에게 중요한 건 의학적 지식이나 근거만은 아니었다. 환자들은 정신적, 신체적 트라우마를 딛고 자기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든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다시 피곤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건조한 목을 물로 축이고 양치를 한다. 두 발로 욕조에 들어가 내 힘으로 샤워를 하고, 두 발로 서서 옷을 입고, 두 발로 페달을 밟아가며 운전을 한다. 예전처럼 빨리 뛰지는 못하지만 급한 수술이나 환자가 있으면 빠른 걸음을 재촉하기도 한다. 외상이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면 가끔은 과거의 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게 도움이 되기도, 진료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 환자와 나를 어느 정도 분리시킬 줄 아는 것이 사실 객관적 진료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환자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내가 환자의 마음을 그냥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각 치료 단계에서 느끼는 감정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에서 환자들에게 닿는 순간이 있음을 느낀다. 이해해주는 의사가 있다는 환자들의 안도감은 나에게도 힘이 되었다.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혹은 하루 온종일 수술을 마친 저녁이면 여전히 조금 부은 다리에 묵직한 통증이 몰려온다. 나의 다리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진료를 할 수 있는 만큼 버텨주길. 통증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면 나의 직업을 건강히 이어갈 수 있을 만큼만 남아주길. 통증이 지속된다면 내가 환자를 이해할 수 있는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덧붙여, 모든 의료진이 환자의 사생활을 이해해주시길 기도한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인이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뉴스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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