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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기급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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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이탈리아의 레전드 골게터인 필리포 인자기는 ‘위치 선정의 달인’으로 유명했다. 스트라이커로서 체격이 좋거나 개인기가 뛰어나지 않았지만, 골문 앞에서 영리하고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공이 오는 위치를 탁월하게 포착해 통산 313골의 득점을 올렸다. 대선 정국에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인자기 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 최근 예사롭지 않은 홍 의원의 지지율 상승세는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정치적 위치 선정이 뛰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야권에서 윤석열 후보를 가장 매섭게 공격해온 이가 홍 의원이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여당 지지자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역선택 성격도 강했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것은 보수 일각과 중도층에서도 윤 후보의 헛발질로 ‘비(非)윤석열’ 정서가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 갈등이 커질 때 홍 의원이 이 대표를 지원한 것도 ‘비윤’의 2030 남성들을 우군으로 만든 요인이 됐다.
□ 홍 의원의 위치 선정은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윤 후보나 최재형 후보가 보수 정체성 경쟁을 벌이며 지나치게 우클릭하자 ‘보수 구태 정치인’으로 비춰졌던 홍 의원이 오히려 중도 성향으로 떠밀려 나온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홍 의원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야권의 노무현’으로 자리매김하고, 거기다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며 화합 기조를 내세웠다. 내친김에 ‘호남 사위’라며 동서화합 기치도 들었다. 가히 위치 선정과 골 감각이 인자기급이다.
□ 인자기는 그러나 스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선수가 아니었다. 동료들의 뛰어난 패스가 없으면 그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그럴 때면 '주워 먹기 선수'란 비아냥도 받았다. 홍 의원도 스스로 정권 교체의 골 찬스를 만든 게 아니다. 윤 후보가 없었다면 홍 의원의 존재감도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비윤 정서'에 기대서 반사 이익만 누릴 수는 없다. 자력으로 정권교체의 명분을 만들지 못하거나, 여권 후보로 유력한 이재명 경기지사를 누를 비전과 의제가 없다면 거품이 금세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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