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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삶으로 넘어오게 한 소설" 한강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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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끌어안고 계속 나아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6년 아시아 작가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당시 명칭은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달 ‘흰’을 낸 한강 작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신작 출간을 기념해 7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제목으로 삼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작가의 말처럼,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지 않겠다는 결의로 끌고 가는 소설이다. 잊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과거는 제주 4·3사건이고, 결의의 주체는 소설가인 경하, 경하의 친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인선,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까지 세 인물이다. 어느 날 인선이 손가락 절단 사고로 입원하게 되면서 경하가 인선의 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가게 된다. 경하가 그곳에서 제주 4·3사건의 생존자인 정심의 지난 삶을 맞닥뜨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은 경하가 무덤가를 거니는 꿈 속 장면에서 시작한다. 눈이 내리는 벌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마치 묘비처럼 심겨 있는 곳에 경하가 서 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경하의 발아래로 물이 차오르고, 무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경하는 어쩌지 못한 채로 꿈에서 깬다.
독자를 소설로 안내하는 이 강렬한 첫 장면은 작가를 이야기로 이끈 장면이기도 하다. 한 작가는 “2014년 ‘소년이 온다’를 발표하고 계속해서 악몽을 꾸는 중에 이 꿈을 꿨다”며 “언젠가 이게 소설의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메모로 머물렀던 꿈이 본격적으로 소설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은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작가의 구체적 기억과 만나면서다. 90년대 후반 한 작가는 제주에 월셋방을 얻어 서너 달을 지냈는데, 주인집 할머니가 어떤 담 앞에서 “여기가 4·3 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던 곳”이라고 설명해준 일이 있었다. 수십 년 전 그곳에서 인구의 십분의 일인 3만 명이 살해되었다는 충격적 실감과 꿈 속 장면이 만나 ‘작별하지 않는다’가 탄생했다.
‘소년이 온다’의 잔상에서 시작된 만큼, ‘작별하지 않는다’는 여러모로 ‘소년이 온다’와 포개지는 작품이다. 각각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이라는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참상을 파고든다. 경하가 광주에 대한 작품을 쓴 적 있는 소설가라는 설정 역시 자연히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소설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극적인 과거 한가운데를 뚜벅뚜벅 걸어가지만, 소설은 끝내 ‘생명’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사랑은 마치 환부에 바늘을 찔러 넣듯 고통스럽다. 소설에서는 ‘손가락이 잘리는 고통’으로 표현되는데, 이 고통이야말로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은 제주 4·3사건에 관한 소설이기도,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소설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대목은 소설 전체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손가락이 잘리면 봉합된 자리에 계속해서 상처를 내 피가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신경에 전류가 흐르고 잘린 부분이 썩지 않아요. 고통스럽지만 환부에 바늘을 계속 찔러 넣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껴안기 어려운 것을 껴안을 땐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죽음 대신 생명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작가에게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일은 “고통으로부터 구해지는 경험”이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며 삶에서 죽음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반대로 이 소설을 쓰면서는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소설이 나를 구해줬다는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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