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부동산 공약’ 비판 불구
진보 주자들 양극화 대응 전략 뚜렷
보수도 진전된 불평등 해법 제시해야
느닷없는 ‘고발 사주’ 의혹 파문에 묻혔지만, 보수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얼마 전 ‘1호 공약’으로 내놓은 부동산정책은 의외였다.
30만 호 공급이 약속된 ‘원가주택’은 무주택 청년가구가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의 국민주택(85m²) 규모 이하 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원가로 분양받아 5년 이상 거주한 뒤 매각을 원할 경우, 국가가 매입해 차익의 70%까지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역세권 첫 집 주택’은 민간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을 300%에서 500%로 높여주고, 이 중 50%를 공공 기부채납을 받는 방식으로 역세권에 시세 50~70% 가격의 공공 분양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요컨대 국가가 서울과 수도권에 총 50만 호의 신규 공공아파트를 무주택ㆍ청년층에 시세의 반값 정도에 공급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즉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국민의 힘 내부에서조차 “이재명표 ‘기본주택’보다 더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어쩌면 윤 전 총장 측에선 포퓰리즘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여권의 최강 대선주자인 이 지사의 세칭 ‘기본시리즈’에 견줄 인상적 공약이 절실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사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포퓰리즘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아온 주자는 이 지사다.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은 국가가 전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 청년에게 연간 200만 원의 기본소득을 나눠주되, 약 60조 원에 이르는 재원은 주로 상위 10% 땅부자들에게 ‘국토보유세’를 징수해 충당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월 8만 원을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느냐는 ‘가짜 기본소득’ 야유부터 사유재산권의 근간을 흔드는 ‘막가파 공약’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그래도 민심의 저변은 크게 흔들렸다.
‘기본주택’과 ‘기본대출’ 공약도 비슷하다. 무리와 허점이 수두룩한 얘기지만, 광범위한 대중적 관심을 모았고, 이 지사로 하여금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힘을 부여했다. 그러니 윤 전 총장으로서는 ‘눈에는 눈’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으로 포퓰리즘 욕을 먹더라도 '맞불전략'을 세운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윤 전 총장의 ‘원가주택’ 같은 맞불전략이 이 지사를 견제하고, 보수에 대한 지지를 청년ㆍ서민, 중도로 확장시킬 수 있는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을까. 안됐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왜냐? 포퓰리즘 냄새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이재명 공약과 보수 쪽 유사 공약의 맥락은 결코 같은 걸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로서 볼 때, 이재명의 ‘기본시리즈’를 비롯한 진보 여권 주자들의 공약과 정책들은 적어도 뚜렷한 전략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월가의 ‘1대 99 시위’ 이래, 4차 산업혁명의 빠른 진전과 함께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한 구조적 접근이 그것이다. 이재명 지사의 국토보유세 신설 공약이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토지 공개념 강화 개헌론 등이 그런 예다. 실용적이든 아니든, 진보 주자들은 그런 시스템 개혁 공약을 통해 집 없는 서민과 일자리 잃은 청년, 수많은 ‘말로만 중산층’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의 청사진을 그려주고 있다.
반면 윤 전 총장을 포함한 보수 주자들은 고작해야 규제완화와 시장주의, 청년 배려, 법치와 상식 같은 추상적 얘기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양극화 해법에선 진보 진영의 ‘도식적 해법’조차 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누가 보수의 최종 주자가 되든 대선에서 진보와 겨루고 보수를 재건하려면 어설픈 선심성 ‘낚시질’보다, 시대와 민심에 부응하는 진전된 사회이념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변혁의 비전부터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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