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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국민 앱' 만든 국내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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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4억 명의 나라 인도에서 국민 앱을 만든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금융기술(핀테크)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가 개발한 '트루 밸런스' 앱은 인도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소액 결제 및 대출 서비스로 유명하다. 누적으로 앱을 내려받은 횟수가 8,000만 건에 이른다.
인도 인구에 비하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이 앱은 구글의 앱 장터 '플레이스토어'에서 라이프스타일 부문 1위를 기록했고 구글이 선정한 인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대표적인 앱(스타터 키트)에 포함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밸런스히어로 사무실에서 이철원(50) 대표를 만나 성공 비결과 인도 시장의 특징을 들어 봤다.
밸런스히어로는 이 대표가 2014년 두 번째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공공정책학 석사를 마친 그는 2006년 아시아 지역에 휴대폰 벨소리 등 각종 부가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 액세스모바일로 처음 창업했다. 첫 창업은 SK텔레콤의 자회사였던 와이더덴 근무가 계기였다. "와이더덴이 아시아 지역 이동통신업체들에게 통화연결음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2001년 와이더덴에서 인도 1위 이통사 에어텔에 이 서비스를 팔았죠. 그때 인도와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이를 계기로 액세스모바일을 차린 이 대표는 통화연결음, 이모티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인도에서 제공해 돈을 벌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주요 사업이던 일반폰 서비스들이 스마트폰에서 통하지 않았죠. 대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개인 서비스(B2C)를 하기 쉬워졌어요."
이 대표가 대안으로 찾은 것이 전자상거래, 게임, 핀테크, 광고솔루션 등 스마트폰에 적합한 4개 사업이다. "2014년 4개 사업을 사내 벤처로 분사했어요. 모두 아시아를 겨냥해 사업했는데 2개만 살아남았죠. 그 중 하나가 제가 만든 밸런스히어로에요."
이 대표는 인도에서 시작한 트루 밸런스를 '제로 투 원' 사업이라고 부른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뜻이다. "핀테크는 인도에 없던 서비스에요. 인도는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하고 대출 등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아요. 따라서 새로운 사업으로 큰 시장을 만들 수 있죠."
그는 인도에서 3가지를 봤다. 시장 크기와 성장 속도, 경쟁 규모다. "사업을 할 만한 충분한 시장이 있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는지,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은 아닌지 고려했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인도 중산층을 겨냥한 금융 서비스다. "성공 요소는 상류층이 아닌 그 아래층을 겨냥한 점입니다. 인도 14억 인구 중 10억 명이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에요. 월 10만~80만 원을 버는 사람들이죠. 우리가 '인도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이들을 겨냥한 사업을 구상했어요. 약 2억 명의 인도 극빈층은 우리도 감당하지 못해요."
'모두를 위한 금융'(finance to all). 이 대표가 2015년 앱을 내놓고 인도 중산층 대상의 금융 서비스 트루 밸런스를 시작하며 제시한 목표다. 한 마디로 인도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금융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모두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시작은 선불제 휴대폰 이용자를 위한 모바일 소액 충전 서비스였다. "인도인 가운데 11억 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이 중 10억 명이 선불 요금제 이용자에요. 선불제는 일정액을 먼저 내고 그만큼만 통화하는 서비스죠. 그래서 잔액 소진 전에 미리 요금을 채워놓는 충전이 중요해요. 인도인들은 최소한 월 3,4회 충전하고 10회 이상 충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전자결제와 대출까지 확대됐다.
재미있는 것은 철저하게 안드로이드폰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회사를 "안드로이드 핀테크 업체"라고 소개했다. "애플 아이폰은 인도에서 시장 점유율이 1%도 안돼요. 비싸거든요. 인도인들은 99%가 중국 샤오미나 오포의 스마트폰을 쓰고 삼성전자 제품도 20만 원 이하 저가폰 위주로 써요. 우리는 앞으로도 아이폰을 지원할 생각이 없어요."
트루 밸런스 서비스의 핵심은 대출이다. 신용등급이 없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AI)으로 금융 데이터를 분석해 신용 점수를 부여하고 대출을 제공한다. "인도에서는 외국계 4개 신용평가기관이 신용등급을 부여하는데, 이를 받은 사람이 2억6,000만 명입니다. 이 중 8,000만 명을 제외한 사람들은 대출을 받기 힘들 정도로 신용 등급이 낮아요. 나머지 10억 명 이상은 아예 신용등급이 없죠."
이 대표는 이들을 겨냥해 ‘얼터너티브 크레디트 코인 시스템’(ACS)이라는 AI 신용등급 심사 시스템을 개발했다. "어떤 앱을 주로 사용하는지, 얼마짜리 휴대폰을 쓰는지 이런 정보들을 취합해 이용자에게 0점에서 1점까지 소수점 단위로 신용등급을 부여 합니다."
ACS는 0점으로 갈수록 신용등급이 높다. "0점에 가까운 신용등급은 월 4만~5만 루피(약 60만~80만원)를 받는 안정적인 급여 생활자들이에요."
트루 밸런스의 경쟁력은 빠른 서비스에서 나온다. 앱으로 대출 신청하면 AI가 신용등급을 산정해 계좌로 송금하기까지 5분이면 충분하다. "다른 핀테크 업체들은 전화로 상대방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오래 걸리죠."
덕분에 대출자가 500만 명, 대출액이 약 900억 원에 이른다. 인도 물가가 우리의 15분의 1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큰 수치다. "인도 물가로 따지면 엄청 많은 액수에요. 1만원을 빌리는 소액 대출이 많아 건수를 기억하기 힘들 정도에요."
이때 중요한 것이 연체율 관리다. 이 대표는 경쟁 서비스보다 낮은 이자로 승부를 걸어 연체율을 줄였다. 트루 밸런스의 이자율은 두 달 단기 대출시 20%다. 반면 인도의 사채 금리는 하루 1% 또는 1주일에 10%다. "사채보다 저렴해 연체율이 4~5%로 낮아요."
이 대표는 이용자 확대를 위해 구글과 페이스북 광고 등 디지털 마케팅과 소개 마케팅을 주로 한다. 소개 마케팅이란 다른 이용자를 데려오면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포인트를 주는 방법이다. "소개로 들어온 이용자가 받은 대출액의 5%를 소개자에게 포인트로 줘요. 인도인들에게는 큰 돈이죠."
지난해 확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 대표에게 황당한 악재였다. 인도 정부가 모든 채무자의 채무 동결을 선언한 것이다. "인도 정부가 금융업체에 지원도 없이 6개월 동안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고 선언했어요. 그 바람에 소규모 금융업체들이 상당수 망했어요. 황당한 정책이죠."
이 대표도 회사 문을 닫을 뻔했다. 결국 구조 조정을 하며 버텼다. 다행이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본 소프트뱅크벤처스와 네이버,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신한캐피탈 등이 지난해 11월 300억 원을 투자해 위기를 넘겼다. 이 업체가 받은 누적 투자액은 1,000억 원이다. "지난해 타격 때문에 흑자 전환 목표를 올해로 1년 미룰 수 밖에 없었죠."
코로나19는 인도 직원들도 덮쳤다. 이 업체의 현지 사무실은 인도 북부의 구르가온에 있다. "인도에 120명, 한국에 50명이 근무해요. 서비스 운영과 마케팅, 고객관리 조직이 인도에 있는데 3명을 제외하고 현지인이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인도에서 근무하는 현지인 직원의 절반이 코로나19에 감염됐어요. 그 정도로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죠."
이 대표는 재택 근무로 돌리고 코로나19 백신을 회사에서 구입해 모든 직원들에게 접종했다. "인도 정부에 백신 신청을 하고 돈을 내면 회사 단위로 접종할 수 있어요. 검사 도구와 치료에 필요한 산소호흡기도 회사 돈으로 구비해 직원들에게 제공했어요."
이 대표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은 달라졌다. "코로나19 광풍이 휩쓸고 간 뒤 역설적으로 집단 면역이 생겼나봐요. 확진자가 예전 만큼 많이 나오지 않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일상 생활에 복귀했어요. 덕분에 사업도 정상화됐죠."
인도의 모바일 금융시장은 규제가 까다롭다. 간편 결제와 대출 서비스를 하려면 인도중앙은행(RB)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심사에만 1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깐깐하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핀테크 사업을 하기 힘들다.
승인 후에도 매달 보고서를 감독기관인 RB에 제출하고 2년에 한 번씩 자격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대표에게는 인도의 높은 규제가 경쟁자를 제한하는 진입 장벽 역할을 한다. "인도에서 간편 결제와 대출 등 2가지 서비스 자격을 취득한 업체는 우리와 미국 아마존 뿐이에요. 아마존이 인도에서 할부 금융 서비스를 해요."
내년 하반기에 이 대표는 은행구좌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이다. "은행들과 제휴해 구좌를 개설해 주는 네오뱅크 서비스를 검토 중입니다. 예금 입출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실상 준 은행인 셈이죠."
인도 은행들은 돈이 많이 드는 지점 대신 온라인 뱅킹에 힘을 쏟고 있다. "은행 면허가 없어서 하기 힘든 서비스를 은행과 손잡고 제공해 이용자를 늘릴 수 있죠. 은행들도 우리가 이용자를 몰아주는 셈이어서 서로 좋은 일이죠."
원래 이 대표는 삼성이 인터넷 사업을 위해 만든 아이마켓코리아에서 3년간 일하다가 와이더덴으로 이직해 5년 근무했다. "와이더덴 아시아사업팀장을 하면서 인도 시장을 알게 됐죠. 그래서 시장을 먼저 인도로 정한 뒤 여기 맞는 창업 아이템을 찾았어요."
이 대표는 요즘 스타트업 창업 열기를 '포유류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대기업이 판치던 공룡의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를 포유류인 스타트업들이 채우고 있어요. 앞으로 스타트업이 큰 역할을 하면서 각 산업 분야의 강자들이 바뀔 겁니다."
그가 예비 창업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세계 시장이다. "이제는 세계를 보고 시작해야 합니다. 중국은 중국업체들이 선점하고 있어서 더 이상 큰 시장이라고 할 수 없죠. 인도는 뛰기 시작하는 코끼리 같은 시장이에요. 코끼리는 뛰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뛰면 무섭죠. 그만큼 인도는 잠재력이 큰 시장이에요. 인도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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