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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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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최근 고창멜론생산자연합회가 진행한 온라인 경매 행사에서 멜론 2통이 275만 원에 낙찰돼 화제다. 낙찰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쓰인다고 하니 일반적 경매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점점 치솟는 과일 값과 프리미엄 고가 과일 마케팅 흐름을 반영하는 것도 사실이다.
□ 황제 과일의 원조는 일본이다. 지난 5월 일본 삿포로에선 '유바리 멜론' 2통이 250만 엔(약 2,600만 원)에 낙찰됐다. 포도 한 송이 가격이 1,000만 원을 넘긴 적도 있다. 유독 일본에서 이런 뉴스가 자주 나오는 건 17세기 에도 막부 시절 최상품 과일을 진상하기 위해 경쟁하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메이지 유신 이후 고가의 과일을 포장해 선물하는 기업 증답용(贈答用) 시장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 우리나라에 멜론을 처음 들여온 이는 ‘한국 농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장춘(1898~1959) 박사다. 그가 중앙원예기술원장이던 1954년 부산 동래구에서 첫 시험 재배가 이뤄졌다. 보급된 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멜론은 1통에 1만 원 안팎이라 비싼 과일에 속한다. 샤인머스캣(알이 굵고 씨가 없는 청포도)과 애플망고, 킹스베리(대왕딸기) 등도 부담스러운 가격이긴 마찬가지다. 6일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샤인머스캣은 kg당 2만 원이다. 백화점에선 포도 2송이 선물세트를 13만 원, 망고 6개는 3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전국 1% 과일 명인들이 키웠다며 일반 과일보다 2, 3배나 높은 가격을 받는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유명 스타까지 동원해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란 차별화 전략도 편다.
□ 크기도 키우고 당도도 높여 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같은 가지의 다른 과일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한 그루에 단 한 개의 열매만 남기기도 한다. 새로운 품종을 도입할 땐 적잖은 시행착오도 겪기 마련이다. 농부들이 이런 과정에서 흘린 땀은 당연히 보상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황제 과일을 위해 일반 과일 생산량이 줄고 누구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점점 사라지며 과일마저 계급화하는 건 아쉽다. 먹음직스러워 집어 올렸다가 가격표를 보고 다시 내려 놓는 사람들이 많다. 이젠 배나 사과도 싸지 않다. 추석을 앞둔 과일 값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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