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 20년, 그 후]

입력
2021.09.11 04:30
수정
2021.09.11 08: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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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전 끝나도 '포스트 9·11' 시대 계속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위협은 다분화하고
서방 내 극우 위협도 부상... "현실 직시해야"
'"양손잡이 대테러 전략 필요한 시기" 진단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에 납치된 비행기(오른쪽)가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으로 불렸던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바로 직전 또 다른 항공기가 들이받은 한 건물은 연기에 휩싸인 채 고층부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에 납치된 비행기(오른쪽)가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으로 불렸던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바로 직전 또 다른 항공기가 들이받은 한 건물은 연기에 휩싸인 채 고층부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지난달 말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완료와 함께 '테러와의 전쟁'이 일단락됐다. 전 세계를 경악에 빠트린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딱 20년 만이다. 하지만 이번 종전이 '포스트 9·11' 시대의 끝은 아니다. 세계는 오히려 20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진 테러 위협에 직면해 있다. 대(對)테러에만 '올인(All in)' 했던 미국과 서방국들 앞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 두 대가 내리꽂힌 9·11 테러의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위협의 다분화

포스트 9·11 시대에 접어든 지 20년이 흘렀건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위협은 사라지긴커녕 오히려 다분화했다. 9·11 테러 주모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10년 전 미군에 의해 살해됐고 관련자들도 생포되거나 죽음을 맞았으나, 그가 이끈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 알카에다는 소멸되지 않았다. 새로운 테러 집단도 계속 등장했다. 무고한 시민 127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IS)가 대표적이다. 역설적이게도 IS는 '대테러전' 명목으로 이뤄진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군 공동화, 정권 붕괴, 내전으로 이어지면서 부상했다. 무려 83개국 연합이 5년에 걸쳐 IS에 맞선 결과 그 기세가 약화하긴 했지만, 여전히 국제 안보에는 큰 위협이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가 자행한 무차별 총격과 자살폭탄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직후 구조대원들이 희생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가 자행한 무차별 총격과 자살폭탄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직후 구조대원들이 희생자들을 이송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이들 두 무장조직을 중심으로 가맹점처럼 작은 테러 집단도 곳곳에서 퍼진 탓에 대응은 더 어려워졌다. 브루스 호프만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CFR) 기고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가맹점' 하나만 있으면, 국제 테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며 "(IS 같은 테러 집단이) 이런 독립적 공격 방식을 장려하면서 현대 테러의 본질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급성장한 소셜미디어도 주요 홍보 무기가 돼 인력 모집을 수월하게 했다. 여기에다 중동 지역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지역 경제가 파탄나고, 교육·보건 등 사회 체계가 무너진 현실은 서방의 기대와 달리 극단주의 세력 확산에 일조했다.

활동 지역이 광범위해진 것도 문제다. 아사프 모가담 이스라엘 기반 국제대테러연구소(ICT) 선임연구원은 프랑스 매체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사헬 지역(사하라 사막 주변)과 마그레브(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 소말리아, 리비아, 모잠비크, 콩고민주공화국 등이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투쟁 세력인 지하디스트의 새 전쟁터가 됐다"고 말했다.

2011년 노동당 청소년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해 77명을 살해한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가운데)이 이듬해 4월 16일 오슬로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오른쪽 주먹을 들고 독일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반무슬림 사상으로 무장한 브레이빅은 이날 "테러 공격은 인정하지만 나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오슬로=로이터 연합뉴스

2011년 노동당 청소년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해 77명을 살해한 노르웨이의 극우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가운데)이 이듬해 4월 16일 오슬로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해 오른쪽 주먹을 들고 독일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반무슬림 사상으로 무장한 브레이빅은 이날 "테러 공격은 인정하지만 나는 무죄"라고 주장했다. 오슬로=로이터 연합뉴스


20년간 간과된,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극우' 테러

2001년 9·11 테러 후 새로 떠오른 세력도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 내의 극우주의자들이다. 9·11 테러가 서방 사회의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고, 이후 중동 전역에서 벌어진 테러와의 전쟁으로 유럽과 미국에는 난민이 몰려들자 반(反)이민 정서는 급속히 퍼졌다. 이에 힘입은 극우 세력은 폭력으로 증오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위협에만 몰두한 대테러 전략은 '극우 사각지대'를 만들어 사실상 그들의 범죄를 방조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경우, 대테러 역량의 80%가 해외에 주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 최대 유대인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에 따르면, 2019~2020년 미국에서 발생한 극단주의 살인 사건 59건 중 2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극우세력의 소행이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에서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5년 연속 감소한 반면, 북미와 서유럽, 호주 및 뉴질랜드에서는 같은 기간 709%가 증가했다. 극우 세력의 공격이 약 250% 증가한 탓이다. 예컨대 2011년 노르웨이에서 반무슬림 극우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노동당 청소년캠프 총기난사 사건으로 77명이 숨져 지구촌에 큰 충격을 줬다. 미 국무부 대테러 담당 출신인 제인스 블라자키스는 일간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우리는 제2의 9·11 테러가 내부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극단주의를 연구하는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미 아메리칸대 교수는 포린어페어 기고에서 "20년간 극우 세력 확장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테러 대응을 위해선) 무력만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제도를 (나라 안팎에서)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미국의 도전 과제는 민첩한 '양손잡이 대테러 능력'을 구축하는 것"(호프만 교수)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국내외 테러 위협에 동시 대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2019년 8월 백인 우월주의자인 패트릭 크루시어스의 총기 난사 테러로 22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월마트 인근에 추모객들이 꽃과 편지 등을 남기고 갔다. 엘파소=AP 연합뉴스

2019년 8월 백인 우월주의자인 패트릭 크루시어스의 총기 난사 테러로 22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 월마트 인근에 추모객들이 꽃과 편지 등을 남기고 갔다. 엘파소=AP 연합뉴스


전 세계 주요 테러 사건. 그래픽=김대훈 기자

전 세계 주요 테러 사건. 그래픽=김대훈 기자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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