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캉스도, 캠핑도 2% 부족해... '5도 2촌' 실험하는 3040

입력
2021.09.05 17:03
수정
2021.09.08 00:2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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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서울에서, 주말에는 충남 금산에서 '5도 2촌' 생활을 하는 김미리씨의 시골집. 그는 1년 반째 금요일 저녁이면 이 시골집에 내려와 밥을 해 먹고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휴일을 보낸다. 김미리씨 제공

주중에는 서울에서, 주말에는 충남 금산에서 '5도 2촌' 생활을 하는 김미리씨의 시골집. 그는 1년 반째 금요일 저녁이면 이 시골집에 내려와 밥을 해 먹고 조그만 텃밭을 가꾸며 휴일을 보낸다. 김미리씨 제공

11년차 직장인 김미리(36)씨는 금요일 밤마다 서울에서 2시간 30분 거리의 충남 금산으로 차를 몬다. 그는 1년 반째 주중 5일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주말 2일은 금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지내는 '5도 2촌' 생활 중이다.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온라인 상점의 상품기획자(MD)를 10년 가까이 했을 때쯤 '번 아웃'이 왔다. 5도 2촌은 그때 택한 휴식 방법이자 재충전 방식이다.

촌집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마당을 바라보며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낭만을 누리려면 얼마나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지를. 집안일은 무한 반복되는 육체 노동이고,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며 방심하다가는 금세 풀로 뒤덮인다. 이쯤 되면 의아해진다. 빡빡한 주 5일을 보내고 격렬히 아무것도 하기 싫은 주말에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할까.

"저도 다 해봤어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기도 하고, 좋다는 호텔도 가보고, 쇼핑하면서 돈도 써보고요. 그런데 그것도 피곤하더라고요. 월요일 출근하면 쉰 것 같지 않고, 숙소는 또 체크아웃 시간 생각해야 되고요. 시골 집에서 생활하는 건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얻게 돼요. 매주 떠나는 아주 익숙한 종류의 여행인 거죠.(김미리)"

완전 귀촌·귀농 부담... 3040의 '이중 생활'

김미리씨가 가꾸는 텃밭. 많은 채소를 이 텃밭에서 자급자족한다. 김미리씨 제공

김미리씨가 가꾸는 텃밭. 많은 채소를 이 텃밭에서 자급자족한다. 김미리씨 제공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두 집 살림, 이중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도시의 삶에 지쳤지만, 그렇다고 경제 활동의 거점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이들이 택한 일종의 절충안이다. 부담 없이 다른 삶의 방식을 실험해 보는 대안인 셈이다. 그래서 5도 2촌을 하는 사람들은 한창 일할 나이인, 완전한 귀촌·귀농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30대, 40대 직장인들이 많다.

캠핑 마니아 김성인(44)씨도 얼마 전 직장이 위치한 대전 근처 충남 금산에 시골집을 마련했다. 그는 "장비 세팅하고 해체하는 것도 일이라 아이와 몸만 가서 캠핑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며 "주변에 보면, 저처럼 캠핑을 좋아하거나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도시의 삶과 병행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5도 2촌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캠핑을 좋아하는 김성인씨가 충남 금산에 마련한 시골집의 수리 전(위쪽)과 후의 모습. 김성인씨 제공

캠핑을 좋아하는 김성인씨가 충남 금산에 마련한 시골집의 수리 전(위쪽)과 후의 모습. 김성인씨 제공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방식의 변화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추세다. 강태웅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다른 사람이 거쳐가지 않은 독립적 휴식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면서 5도 2촌이 아니라 1도 6촌도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5도 2촌 생활을 하는 이들은 시골 생활 거처로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가격이 싼 데다 옛집의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요즘 세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다. 직장인 김용성(44)씨도 최근 충남 보령의 한 시골집을 평당 20만 원이 안 되게 매입해 고쳤다. 주중에는 대전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주말에는 보령 집에서 쉬거나 작업을 하며 보낸다. 그는 "큰 나무처럼 시간을 들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집도 그렇다"며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용성씨가 충남 보령에 마련한 시골집의 수리 전(위쪽)과 후의 모습. 그는 "귀촌을 염두에 두고 내가 시골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경험해 보기 위해 5도 2촌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용성씨 제공

김용성씨가 충남 보령에 마련한 시골집의 수리 전(위쪽)과 후의 모습. 그는 "귀촌을 염두에 두고 내가 시골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경험해 보기 위해 5도 2촌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용성씨 제공


"주말 주택은 작을수록 좋아… 관리 염두에 둬야"

시골집, 촌집 수요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점차 늘고 있지만 마땅한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대부분 집에다 밭을 끼워 수백 평대로만 매매하거나 마을 주민끼리만 알음알음 거래해 공식적인 매물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김미리씨가 주말 충남 금산 시골집에서 차린 한 끼 식탁(위쪽). 많은 식재료는 텃밭에서 수확해 쓴다. 김미리씨 제공

김미리씨가 주말 충남 금산 시골집에서 차린 한 끼 식탁(위쪽). 많은 식재료는 텃밭에서 수확해 쓴다. 김미리씨 제공

그래서 '귀한' 촌집 대신 1억 원 안팎의 작은 아파트를 매입해 5도 2촌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서핑 인구로 젊은 층 유입이 늘어난 강원 양양이 대표적이다. 55~80㎡ 면적의 양양 A아파트는 이미 서울 사람들의 세컨드 하우스로 유명하다. 거래가 서울에서 이뤄질 정도다. 이 아파트 매물을 보유한 서울 강북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아파트를 내놓은 사람도, 문의하는 사람도 모두 서울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경험자들은 5도 2촌 생활이 성공하려면 시골집의 관리가 용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울산에 거주하는 황효영(39)씨는 불과 3㎞ 떨어진 거리에 작은 집을 구해 3년째 5도 2촌을 즐기는 중이다. 그는 "여름에는 며칠만 지나도 풀이 감당할 수 없게 자란다"며 "자주 갈 수 있는, 작은 집일수록 5도 2촌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김미리씨도 "시골집은 아파트에 비해 정말 손이 많이 간다"며 "텃밭 일을 안 하고 싶은 분이라면 대지가 작은 집을 구하는 등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는 집을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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