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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지 않는 것이 나의 모성애’라는 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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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직원보다 여성 직원의 수가 더 많은 ‘여초 직장’에 다닌 적이 있다. 사내 문화는 깔끔한 편이었고 업무 중 여성이라는 이유로 불쾌한 일을 겪은 적도 딱히 없었다. 무난하게 얼마를 다니고 승진을 기다리게 되었을 즈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가 대다수인 사원-대리 직급에는 여성 직원의 수가 훨씬 많았는데, 과장급부터는 그 비중이 뒤바뀌어 있었다. 아이를 낳은 여성 직원에게는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주고 복직을 보장해주는 지극히 ‘상식적인’ 회사였음에도 그러했다.
일부는 자의로 육아를 선택했으나 복직해 계속 다니려던 직원들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둘째가 생겨서, 더는 할머니에게 맡길 수 없어서, 승진이 늦어져서와 같은 이유로 하나씩 조용히 튕겨 나갔다. 비슷하게 공부하고 일해 온 또래 기혼 남성들은 아무도 고르지 않는 선택지들이었다. 30대 초엽에 막 들어선 나는 40대 이후의 직장생활을 상상할 수 없었다.
친구들의 회사 역시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아이와 경력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40대 이상의 여자 상사는 선배이기 이전에 생존자였다. 잠을 줄였다더라, 집에서도 일했다더라 같은 이야기가 전설처럼 곁들여졌다. 일 욕심은 있지만 슈퍼우먼이 될 자신은 없었던 우리에게 결혼은 마음과 선택의 문제였으나 출산은 아이와 사회적 자아를 맞바꿀 각오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면서 아이와 엄마가 모두 울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반차를 쓰기가 눈치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출산의 결심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 돌리고 나면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하나였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
최근 뉴스는 연일 저출산의 심각성을 짚는다. 마치 가뭄이 들어 흉작이 났고 기근이 발생할 것 같다는 어투로 이제껏 200조 원을 썼는데 올해는 아이가 20만 명 태어났고 곧 인구 절벽이 온다는 예측을 쏟아낸다. 돈을 얼마 주고 돌봄 시간을 늘리고 경력단절여성 ‘맞춤형’ 일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대책도 빠지지 않는다.
절박하다고 외치는 것에 비해 내놓는 해결책은 액수만 달라질 뿐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흐름이다. 취업 후 출산한 여성의 41%가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경력단절 후 재취업한 여성 두 명 중 한 명이 이전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늘 예산 규모를 강조하는 숫자에 밀려난다.
한편 비출산을 선언하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낳지 않는 것이 나의 모성애다’라는 문장이 자주 맴돈다. 한국 저출생의 실질적 원인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아이는 돈과 주차공간만 생기면 마련할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다. 행복한 아이를 위해서는 행복한 부모가 필요한데 둘 다는 고사하고 둘 중 하나만 행복해질 가능성도 미지수인 상태라면 ‘낳지 않는 애정’은 더 이상 모순이 되지 않는다.
길게 적었으나 간단한 논리다. 여성은 엄마가 될지, 되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여전히 ‘워킹’과 ‘경력단절’ 뒤에는 당연하게 ‘맘’과 ‘여성’만이 따라붙는다. 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에 사람을 수납할 틈새만 주섬주섬 만드는 정책으로 대체 어떤 결과를 예상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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