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독립 76주년을 축하하며

입력
2021.09.06 04:30

지난달 1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76주년 독립기념일 국기게양식. EPA 연합뉴스


8월 17일은 인도네시아의 제76주년 독립기념일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의 독립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고, 단일 공화국을 유지하려는 여정도 험난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70~80년대의 오일붐과 반공주의자였던 수하르토 2대 대통령에 대한 서구의 전폭적 지원 등의 호재를 안고 눈부신 경제 성장이 이뤄졌지만, 군부 통치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분리주 운동의 탄압 등 국가폭력이 이어졌다.

1998년에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의 책임을 지고 수하르토가 하야한 이후 전국을 휩쓴 민간 폭력과 혼란은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국가 만들기’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제 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도 동남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선거 때마다 축제를 즐기듯 투표권을 행사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쁨이 느껴지는 것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모진 시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1만7,000여 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 군도에는 1960년대 말까지 수백 개의 왕조가 존재하고 있었고, 불과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국가에 편입되기 시작한 산간지대 종족들도 무수히 많다. 이런 ‘분열적’ 영토성이 단일한 지역 정체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19세기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부터이다.

인도네시아 국사는 네덜란드의 350년 식민통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지역별 식민의 기간은 전부 다르다. 자카르타나 마카사르 등 몇 개의 도시는 일찍이 17세기부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침략으로 유럽인의 도시가 되었지만, 군도의 대부분 왕조들은 유럽 상인세력들을 무역 파트너로 여기며 근대적 발전을 이루었다. 자바와 수마트라 등지에서 1830년대부터 식민 수탈이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외곽 도서에서 네덜란드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진 것은 1905~06년의 일이다.

1942년부터 동남아시아를 식민화한 일본의 강점기가 끝난 1945년 8월 17일 수카르노와 하타 등 민족지도자들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자주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식민 영토를 되찾기 위해 다시 도래한 네덜란드와 연합군과의 치열한 전투 기간(혁명기)을 마치고 마침내 1949년 12월, 인도네시아는 실질적 독립국가가 되었다.

크게 분류해도 300개가 넘는 종족 문화에, 식민의 기억 이외에 통일된 정치체제를 가져보지 못한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에게 있어 단일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민족의식을 불과 수십 년 만에 생성하려다 보니 반발도 많았고, 사회적 합의도 힘들었다. 독립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지방 반란과 분리독립 운동, 1965년 수십만 명의 공산당(무고한 시민 포함)이 학살된 ‘9·30 사태’, 1998년 이후의 민간 폭력 등도 전부 급속히 만들어지고 강제적으로 추진된 민족주의 정책의 폐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수한 혼란을 겪으면서도 인도네시아인들은 놀라운 응집력을 보여주며 민족의식을 창출해냈고, 민주화도 이루었다. 그 이면에는 인도네시아를 이끈 걸출한 사상가와 운동가들이 있었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이 만든 판차실라라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인도네시아를 천명하되, 서로에 대한 관용,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문화적 차원에서의 응집성을 유도했다.

수하르토에 의해 판차실라는 정적을 제거하고 민주, 인권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분명 인도네시아라는 분열성이 높은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제시했다. 인도네시아를 세속국가로 명시하고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 세력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은 판차실라를 자신들에 대한 탄압이라고 여긴 무슬림들은 오랫동안 이에 반발했다.

그러나 제4대 대통령에 오른 무슬림의 수장 압두라흐만 와히드는 종교 간 관용과 화합을 의미하는 판차실라를 수호하며, 이슬람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지 않고 문화적이고 관용적인 성격을 띠고 성장하도록 유도했다. 아시아 경제 위기 와중에 수하르토의 오른팔이라는 국민의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제3대 대통령에 오른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는 1년 7개월 동안의 짧은 집권 기간에 민주화법과 지방자치법을 통과시켰고, 동티모르의 주민투표를 허락함으로써 동티모르를 분리독립운동 지역 중 유일한 독립국가로 만들었다.

인도네시아를 실제로 민주화와 지방자치의 시대로 이끈 것은 수하르토 정권 시절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지하에 숨어들어서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수많은 시민들의 희생과 눈물이었다. 무니르 사이드 탈립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인권 변호사로 노동운동, 과거사 청산 운동, 국가폭력반대 운동 등에 헌신하다가 비행기 안에서 전 국가정보원에게 독살당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인도네시아 민주화의 상징이 되었다.

아데 로스티나 시톰풀 역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인권 운동가였다. 그녀는 1965년 공산당 학살 때 희생자들의 가족을 돕는 일부터 시작하여 1992년 동티모르로 이주한 후 군부에 의해 자행된 산타크루즈 학살의 피해자들을 돕고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을 지원했다. 이후 모든 종류의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시민연대를 결성하여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일보 전진시켰다. 동티모르의 독립을 지원하는 그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국가적 배신자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족주의란 우리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 국가, 사람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수호하는 데서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우리 중 일부를 적으로 돌리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자국우선주의와 소수종족, 타인종에 대한 증오가 세계 곳곳에서 팽배해지고 있는 가운데, 관용과 화합에 바탕을 둔 ‘좋은’ 국가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인도네시아 사상가들의 소망대로 전 세계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길 바라면서,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모든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독립 축하 인사를 바친다.



송승원 한국외국어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 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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