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간 손절' 뜻대로 될까 

입력
2021.09.05 10:00
25면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8월 31일 철수 임무를 띤 미군 마지막 비행기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 활주로를 이륙했다. 이로써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돌이켜 보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바이든 정부가 물려받은 대표적인 쓰라린 유산이다. 미군 2,440여 명이 사망하고, 2조 달러 이상의 막대한 전비가 들었지만 안정화는 요원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란 비판이 터져 나왔다.

무엇보다 민주 정부를 세우겠다는 국가건설 목표는 아득하기만 했다.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을 안정적인 서구식 민주국가로 바꾸려는 시도는 아무리 오래 미군이 남더라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의 상향식 민주주의 도입은 완전 실패로 끝나버렸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쟁 회의론이 우세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을 단행했다. 중동 지역 군사적 연루 회피 기조는 오바마 대통령 이후 일관된 미국의 외교정책 방향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작년 2월 트럼프 정부는 탈레반 지도자들과 협상하며 미군 철군에 이미 합의하지 않았던가.

이 때문에 바이든 정부의 철군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다만 철군 이후의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수도 카불까지 순식간에 점령해 버릴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정보당국은 탈레반이 지금처럼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차지하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는 얘기도 들린다. 어찌 됐든 바이든 정부는 허둥지둥 쫓기듯 제국의 무덤에서 벗어나는 모양새였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미군들이 마지막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런데, 과연 떠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떠날 수 있을까? 중동 문제를 완전히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미국의 본토에 위해를 가하는 위협이 사라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오늘날의 ‘탈레반 2.0’이 과거와 달리 글로벌 테러조직과 결탁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탈레반이 미국으로 상징되는 '먼 적(far enemy)'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추종하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레이트'(토후국가) 구축에 만족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강대국이 떠난 자리엔 돌발 변수가 항상 나타났다. 198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소 간의 대리전적 전쟁이 끝나고 강대국이 모두 떠나자 1996년 탈레반이 권력을 차지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오바마 정부는 2011년 말 테러와의 전쟁 승리를 선포하며 이라크에서 완전히 떠났다. 하지만 2014년 6월 ISIS라는 더 센 돌연변이가 나타나자 미군이 돌아와야만 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은 ISIS 호라산 지부(ISIS-K)의 위협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미국은 최대의 외교 현안으로 떠오르는 중국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중동을 떠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중동에서 힘을 빼고 아시아에서 중국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앞으로 중국의 위협은 중동을 포함하는 제3세계의 다양한 전선에서 확대되어 나타날 개연성이 크다. 중국 위협이 결코 아시아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가 중동 지역에서 경제 문제에 대한 관여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징이 과거에 비해 중동 지역의 정치안보 이슈에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이 바라는 ‘중동 털어내기’란 그리 간단치 않다. 떠나는 마지막 비행기를 보면서 훗날 미군을 실은 비행기가 다시 활주로로 돌아올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김강석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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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석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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