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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메타버스? 이미 30년 넘게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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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최근 들어 업계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 언론에서도 차세대 산업으로 내세워지며 화제를 뿌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에서 가상화폐(암호화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메타버스 관련'으로 뭉뚱그리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거품에 불과하다"며 회의적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많다.
갑작스럽게 유행을 탄 것처럼 보이는 이 개념은, 알고보면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 됐다. 1980∼90년대에 나온 과학소설(SF) 속에서 제시된 미래상을 최대한 빨리 실현하고 싶어하는 열망에 빠진 사람들이 잘 조명되지 않은 곳에서 도전을 이어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때는 '세컨드라이프'로 대표되는 가상세계가 잠시나마 대대적으로 조명을 받다가 사그라들기도 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세계(Virtual World)와 비슷하지만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단순히 가상세계라면, 현재도 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MMOG)으로 충분히 보편화돼 있다.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1992년작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물론 스노 크래시는 윌리엄 깁슨의 1984년작 '뉴로맨서(Neuromancer)'나 버너 빈지의 1981년작 '진정한 이름(True Names)' 등, 현실과 구분되는 '사이버 공간'을 묘사한 기존 작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개념 자체는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스노 크래시에서 메타버스는 현실과 닮은 3차원(3D) 세계 인터페이스로 접속할 수 있는 범용 인터넷으로 묘사된다. 이 소설에서 개인들은 현존하는 VR 고글과 같은 기기로 메타버스에 접속한다. 메타버스 내에 접속한 사람은 자신의 아바타를 키 제한만 빼고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으며, 메타버스 안에서 자산을 소유·거래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즐긴다. 닫힌 세계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명확한 목적성이 있는 기존의 게임들과 구분되는 특성이다.
로욜라마운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연구진은 2013년 이를 바탕으로 메타버스의 조건을 ①리얼리즘 ②편재성 ③상호운용 가능성 ④확장성 등으로 규정했다.
이들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겉모습이 현실과 큰 차이가 없어 현실 세계의 개인들이 몰입하기 쉬울 뿐 아니라, 이용자가 디지털 데이터를 원하는 대로 창조하고 수정할 수 있으며, 이 디지털 데이터를 다른 플랫폼에도 활용하고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를 들면, '포트나이트'에서 활용한 아바타를 '로블록스'나 '제페토'에서도 별 차이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메타버스가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스노 크래시가 발표되기 전인 1987년, 영화 '스타워즈' 연작으로 유명한 루카스필름 산하 게임 개발진은 당시 PC인 '코모도어 64' 기반으로 실험적 온라인 게임 '해비타트'를 발표해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이 게임은 캐릭터들에게 퀘스트(임무)를 부여하면서 사실상 현대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온라인 게임은 이용자들의 행동에 일정한 자유도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게임 속에서 대화하고, 가상의 은행 계좌를 만들어 거래할 수 있었으며, 결혼을 하거나 종교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가상 세계에서 현실의 게이머를 대리하는 '아바타'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것도 이 게임이다. 하지만 약 500명이 동시 접속하는 수준에서도 통신망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프로젝트가 지속되지 못했다.
해비타트는 소설 '뉴로맨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스노 크래시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에는 3D 그래픽 기반으로 가상 세계를 구현하려 했던 시도도 있었다. 1995년작 '액티브월드'는 실제로 스노 크래시의 무대인 메타버스를 구현하려 했던 프로젝트로,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이용자가 직접 사물을 제작하거나 여럿이 힘을 합쳐 환경을 구현하는 기능을 제공했다.
2003년 최초로 등장한 '세컨드라이프'는 메타버스 혹은 가상세계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들 중 가장 큰 주목을 받은 프로그램이었다. 3D 기반에 아바타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것은 기존 메타버스 지향 게임들과 같았다. 여기에 더해, 세컨드라이프는 게임 안에서 물체를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제작한 3D 개체를 세컨드라이프 세계 내로 삽입(import)해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한층 높아진 자유도와 함께 가상 경제가 고도로 발달한 점도 세컨드라이프의 특징이었다. 게임 내 화폐인 '린든 달러'가 실제 돈으로 바꾸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세컨드라이프에서 게임 내 상품을 판매해 큰돈을 버는 사례도 생겼다. 에일린 그레이프가 운영한 앤시 청(Anshe Chung)이라는 아바타는 게임 내에서 토지를 개발하고 임대하는 부동산 사업을 벌였고 게임 내 상품 거래 사이트를 운영하기도 했다. CNN은 그를 '가상 록펠러'로 소개했다.
세컨드 라이프는 2000년대 말 화려한 주목을 받은 후 2010년대부터는 새로운 이용자 유입이 줄면서 활기를 잃었다. '세컨드라이프 만들기'를 쓴 기술 작가 와그너 제임스 아우는 "개발사인 린든랩은 세컨드라이프를 '3D 인터넷'으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대중은 여전히 이 프로젝트를 목적성이 뚜렷하지 않은 게임으로 여겼다"고 분석했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세컨드라이프의 기반인 3D 그래픽은 질적으로 들쭉날쭉했고 제작은 어려웠다. 당시 많은 다중 접속 프로그램들이 겪은 것처럼 사람들과의 상호작용도 매끈하지 못하고 일정한 시간차(time lag)가 발생했다. 이런 점을 견디지 못한 이용자들이 이탈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지 못한 것도 세컨드 라이프의 난점으로 꼽혔다.
열기가 예전만 못할 뿐, 세컨드 라이프 자체는 오랫동안 메타버스의 이상을 실현할 만한 표준으로 여겨지며 명맥을 이어 왔다. 비상업적으로 메타버스를 구현하겠다는 다수의 독립 프로젝트도 그 표준은 세컨드라이프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열기가 더해지면서 세컨드라이프의 이용자도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현재는 경쟁 플랫폼도 많다. '메타버스'의 하나로 알려진 게임인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도 세컨드라이프 만만찮게 역사가 깊다.
2009년 모장이 개발한 마인크래프트는 기본적으로는 게이머가 맨손으로 시작해 자원을 채취(마인Mine)하고 아이템을 제작(크래프트Craft)해 자연에서 살아남는 생존이 목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지형과 아이템 등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샌드박스' 기능이 포함돼 있고, 이를 넘어서 게이머가 게임의 시스템과 내용 자체를 변경하는 '모드(모디피케이션)'도 활발하다. 이를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아예 '게임 속 게임'을 만들어내는 이용자들도 흔하며, 숱한 유명 유튜버들도 배출했다.
로블록스는 우리나라에선 비록 마인크래프트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베타서비스를 2004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은 마인크래프트보다 앞선다. 로블록스는 '게임 속 게임 제작'을 기본 구조로 하며,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이벤트도 수시로 실시해 왔다. 미국에선 2010년대 초부터 이를 이용한 10대 게임 개발자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해, 등장 17년만인 올해 비로소 기업공개(IPO)를 하며 화제를 뿌렸다.
물론 이 모든 게임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노 크래시에서 묘사되고 세컨드라이프가 지향한 이상대로라면 특정 플랫폼(게임)에서 만든 데이터나 아이템을 다른 플랫폼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글과 그림으로 된 인터넷 페이지만큼 손쉽게 호환되는 '3D 표준'이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전문 벤처 투자가이자 '메타버스 프라이머'의 저자인 매슈 볼은 "기업을 비롯한 여러 주체들이 독자적으로 플랫폼을 발전시키는 상황이라 엄밀한 의미의 메타버스가 당장 구현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러 이용자가 요구할 경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바타를 여러 플랫폼을 통해 공유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포트나이트를 만든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최고경영자(CEO)도 메타버스에선 이런 개방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플의 폐쇄적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그는 메타버스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메타버스를 정의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앱스토어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게이머의 형상이 한 곳(게임)뿐 아니라 다른 곳(게임)에서도 유지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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