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는 최소 소득 보장책이자 ‘토지 불로소득’ 환수책”

입력
2021.09.02 17:00
수정
2021.09.02 17:00
24면
구독

[장인철의 관찰] 강남훈?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ㆍ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공유부’ 개념 따르면 토지 발생 수익 10% 정도는 공공 몫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제’는 지금 대선국면에서 여야를 통틀어 가장 논쟁적인 공약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최소 생활비를 나눠주겠다는 얘기는 지난 대선 당시 이 지사가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가히 선풍적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재등장한 이 공약엔 뜨거운 관심 못지않게 보수 야권은 물론이고, 진보 여당 내에서조차 비현실적이라는 비판 또한 거세다.

기대와 관심보다 비판이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 지사는 잠시 기본소득제 공약을 접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론을 계기로 이 지사 측은 다시 한번 기본소득제 공약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최근엔 기본소득정책 청사진을 공식 발표하고, ‘기본주택’과 ‘기본대출’ 등을 더해 ‘기본시리즈’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과연 기본소득제는 실현 가능한 의제일까. 진보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 지사에게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되레 그를 주저앉힐 아킬레스건이 될 것인가. 이 지사의 기본소득제 공약에 이론적 틀을 제시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단숨에 명실상부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점진적 시도는 필요하며, 언젠가는 보다 진전된 기본소득제의 현실 적용을 진지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강남훈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이재명표 기본소득제 설계자로서 "기본소득제는 저소득층 소득보장책이자 부동산 불평등을 해소할 토지 불로소득 환수책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고영권 기자

강남훈 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이재명표 기본소득제 설계자로서 "기본소득제는 저소득층 소득보장책이자 부동산 불평등을 해소할 토지 불로소득 환수책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고영권 기자

차기 정부서 국민 1인당 연 100만 원ㆍ청년 200만 원 지급

-이재명 지사가 최근 ‘기본소득제 청사진’을 공식 발표했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제 설계자로서 청사진의 골자를 설명해 달라.

“이 지사가 발표한 청사진은 시행 첫해인 2023년에 전 국민에게 연 25만 원, 청년에게 추가로 연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임기 내에 전 국민에게 연 100만 원, 청년에게 연 200만 원 지급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기본소득제의 최종 목표는 전 국민에게 기초생활수급비 수준인 월 50만 원, 연 600만 원 지급이지만, 임기 중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원은 2023년 시행 예산은 20조 원 정도로 예상하는데, 일단 600조 원 규모인 정부 지출예산 구조조정 등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한편 2022년 정기국회에서 기본소득 정착을 위한 기본소득토지세와 기본소득탄소세 등의 입법화를 완료해 안정적 재원 확보의 틀을 만들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이 들끓는다. 야권 대선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재정 50조 원을 써서 모든 국민에게 월 8만 원씩, 용돈도 안 되는 돈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선거 앞두고 돈으로 표를 사려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여당 주자들조차 "가짜 기본소득"부터 “나라 망칠 감언이설”이라며 맹공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답하겠는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돈이 당장 지급되는 것도 아닌데 기본소득이라고 하느냐는 시각에서 ‘용돈도 안 되는 돈’이니 ‘가짜 기본소득’이니 하는 것 같다. 초기에 기본소득 지급금이 충분치 못한 건 맞지만, 일부 오해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기본소득은 전통적 복지제도에서 말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최소 소득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기본소득론은 토마스 페인의 ‘공유부(common wealth)’ 개념에서 비롯된다. 공유부라는 건 예를 들어, 토지나 천연자원은 원래 인류의 공동자산이기 때문에 비록 법적 소유자라고 해도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독차지해서는 안 되며, 그 수익의 아주 적은 일부라도 공유부로 간주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귀속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은 그 공유부에 대한 기본적 권리에 따라 사회구성원이 수익을 배당받는 소득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처음엔 적게 시작해서 점차 공유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넓혀 가면서 늘려가게 되는 게 맞고, 궁극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에 이르는 걸 목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소득토지세' 헌법상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 부를 수도

-기본소득제를 뒷받침할 세제인 기본소득토지세(토지보유세)나 기본소득탄소세가 ‘공유부’ 개념에 따른 것이고, 그 세수를 기반으로 기본소득제를 시행하겠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커 보인다. 무엇보다 ‘공유부’ 개념에 따른 세제는 우리 헌법상 보장된 사유재산권에 대한 침해일 수 있고, 그렇다면 이재명표 기본소득의 제도적 기반 자체가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지 않나.

“기본소득토지세나 기본소득탄소세 등의 과세 철학이 그렇다는 것이지, 법률로 그런 철학까지 명시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요컨대, 입법자의 재량권으로 보유세로서 세목과 세율을 신설하되, 공유부 개념을 굳이 법문화하지 않으면 헌법의 사유재산권 보호와 상충된다는 논란을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입법이 된다면 관련 세수를 기본소득 특별회계의 수입으로 한다는 점 정도만 규정되면 된다고 본다.”

-우리 헌법에 ‘토지공개념’ 조항이 있지만 공익을 위해 토지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정도이지, 토지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까지 부인하는 건 아니다. 반면 ‘공유부’ 개념은 토지 등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인정한다면서도 사실상 재산권의 일부가 공동에 귀속된다고 본다.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측에선 헌법과 기본소득 관련 과세 간의 상충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반대 측에선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생각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토지나 천연자원에 대한 소유권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발생한 수익의 90%를 소유자 몫으로 하되, 남은 10% 정도를 ‘공유부’로 인정하고 그걸 나누자는 식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실제 기본소득토지세를 시행할 경우 세율도 현재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보유세 실효세율이 0.17%인 점을 감안해 초기엔 토지 과세표준액의 0.5% 정도로 할 계획이다.”

민간 소유 79% 전국 토지가격 5년간 1,855조 원 상승

-기본소득토지세 계획과 관련해 민간 토지 보유 상황이나 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 발생 추이 같은 걸 파악한 자료가 있나.

“우리 국토에서 개인과 법인 등 민간이 보유한 토지는 전체 가액 기준으로 약 79%에 달한다. 개인 약 57%, 법인이 22%다. 여기서 발생하는 토지 불로소득이 막대하다. 2015년 우리나라 연간 명목 GDP가 약 1,658조 원이었다. 당시 전국 토지 평가액이 GDP의 3배 정도인 약 5,015조 원이었다. GDP는 지난해 약 1,933조 원으로 2015년 대비 5년 동안 16.6%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토지 가격은 7,364조 원으로 같은 기간 46.8% 증가했다. 이 기간 중 가격 증가액 2,349조 원의 79%만 쳐도 약 1,855조 원이 땅부자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기본소득제 공약이 기본소득 자체보다 오히려 기본소득토지세 등의 신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맞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 무조건적으로 소득을 나눠준다니까, 당장은 그게 가능하냐, 또는 어떻게 얼마씩 나눠줄 거냐는 쪽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하지만 기본소득제는 소득보장제도로서의 성격과 함께, 기본소득토지세나 기본소득탄소세 등을 과세함으로써 부동산 불평등 해소나 환경보호 등을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을 아울러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토지세를 통한 부동산 문제 해결도 매우 중요한 정책목표라고 생각한다.”

강남훈 상임대표는 지난달 26일 에서 "기본소득토지세가 부과되면 부과된 세금에 준하는 만큼 집값과 땅값도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장인철 논설위원은 하락 기대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다. 고영권 기자

강남훈 상임대표는 지난달 26일 <논담> 에서 "기본소득토지세가 부과되면 부과된 세금에 준하는 만큼 집값과 땅값도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장인철 논설위원은 하락 기대의 오류 가능성을 지적했다. 고영권 기자

“토지세 부과로 부동산값도 하락 기대”…오류 가능성

-기본소득토지세가 어떤 경로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은행 이자율이 5%라고 할 때 특정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 담보 대출의 이자로 매년 300만 원을 내야 한다면 그 사람의 대출금은 6,000만 원일 것이다. 이 부동산을 대출을 끼고 판다면 부동산 가격을 6,000만 원 낮춰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년 30조 원의 토지세를 내게 되면 토지 가격은 600조 원 하락하게 된다. 이로 인해서 1경2,000조 원인 부동산 가치는 5% 정도 하락해 거래되게 된다. 부동산 가치 600조 원 하락은 무주택자들에게 총 600조 원의 주택구입보조금을 주는 셈이 된다. 주택가격에 비례해 전세가격도 하락한다면 전세 사는 사람들에게 보증금 5%를 되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약간 이상하게 들린다. 그런 논리라면 서울 강남의 집값도 종부세를 감안한 가격만큼 하락해야 하는데, 전혀 아니지 않나. 일단은 이론적 가설로 여기겠다. 부동산정책적 효과는 차치하고, 기본소득제에 대한 폭넓은 의구심 가운데 하나는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생활비를 나눠줌으로써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하지 않으며 생활하는 ‘불로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겐 일을 해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게 당사자 개인에게나 사회적으로도 좋은 것 아닌가.

“일단 차기 정부 내 월 8만 원 정도 주는 기본소득제로는 ‘불로생활’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기본소득제가 기초생활보장 수준인 월 50만 원 주는 정도에 이를 경우는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 다만 기본소득제의 초기 옹호자였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성취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뭔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따라서 충분한 기본소득이 주어져도 사람은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두 종류의 인간이 있을 것이다. 일을 찾아서 하려는 사람, 그저 놀고 먹으려는 사람. 하지만 저는,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일을 찾아서 뭔가 하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

기본소득 나눠줘도 ‘불로생활’ 대신 일 더 할 것 낙관

-인간의 본성을 굉장히 낙관적으로 보시는 것 같다(웃음). ‘불로생활’을 보장하는 위험을 피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할 수 있는 소득보장방안으로 재경원 금정국장을 지낸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등 정통관료 출신 인사들이 최근 ‘부의 소득세제’를 제안했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보편적 소득안전망’ 구축을 제안했다. 이들은 굳이 기본소득제가 아니라도 기존 복지제도의 취약점으로 꼽히는 ‘낙인효과’나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면서 근로를 유인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 ‘부의 소득세제’는 개인의 소득이 최저 생계비나 소득 공제액에 미치지 못할 때 최저 생계비와 실제 소득 사이의 차액을 정부가 보조하는 세제다. 시행을 위한 재정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재원 확보를 위해 별도로 세목을 신설할 필요도 덜할 것이다. 다만 기본소득제가 기본소득토지세 과세를 통해 부동산 불평등을 시정하고, 장기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완화하는 부가적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반면, 부의 소득세제 방식은 저소득층 소득보장 방안으로서만 유효할 것이다. 소득분배효과는 근본적으로 기본소득제와 유사할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보수 쪽에서 부의 소득세제를 공약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기본소득제와 절충하고 수렴할 여지도 충분히 있는 방안이다.”

-기본소득제는 실업ㆍ질병ㆍ산재ㆍ은퇴ㆍ출산ㆍ육아 등 사회적 위험 전반에 걸쳐 시행 중이거나 시행될 전통적 복지시스템을 상당 부분 대체해야 하고, 되레 부문별한 복지서비스를 위축시켜 질 좋은 복지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기본 복지시스템과 무리 없는 조화가 가능한가.

“기본소득제는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에서 공공부조를 일부 대체하고, 사회수당과는 동일한 성격이다. 따라서 시행될 경우 기존 공공부조나 사회수당제도와의 조정이 필요하다. 다만 기존 복지제도의 사회서비스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제는 기본소득토지세 등 목적세를 통해 별도 재원을 조성해 시행되기 때문에 기존 복지예산을 깎아 먹지도 않는다. 또 하나, 지금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확대 속도가 너무 느리다. 가장 심각한 게 중산층이 복지제도에서 소외되고 있는 문제다. 통계적으로 중위소득의 50~150%를 중산층으로 잡을 때, 1인 기준 연소득 약 1,000만~3,000만 원 해당자가 중산층인데, 월급으로 치면 80만~250만 원 받는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그 정도 월급을 받는 사람들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다. 그래서 기존 복지제도는 비정규직들한테 세금을 거둬서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식이 되는 거다. 기본소득제는 중산층까지도 즉각적인 소득보전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다. 따라서 지체되고 있는 복지 확대를 보완하는 방안으로도 유효하다.”

기본소득토지세 국민 85% 혜택 보는 세제

-기본소득토지세나 탄소세 등 기획된 세제가 조기에 가동되지 못하면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

“연간 30조 원 정도의 세수를 목표로 한 기본소득토지세 부과는 차기 정부 들어 국회를 통과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고 본다. 설사 2023년에 입법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해도 가칭 ‘기본소득위원회’ 등을 통해 충분한 정책홍보가 이루어지면 입법이 무난할 것으로 본다. 전 국민의 85%가 혜택을 보는 세제인 데다, 부동산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국민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나중에 기본소득제 정착 단계에서 재원이 더 필요하면 국민적 합의를 거쳐 ‘시민소득세’ 같은 추가적 기본소득 목적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인철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