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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서비스, '개선' 넘어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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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5> 기술과 함께 재도약의 기회를 잡자
부동산 중개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중개보수 인하 요구와 함께 서비스 개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복덕방'의 제도화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공인중개사 제도는 공정하고 안전한 부동산거래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역적으로 독점적인 중개시장을 형성해 경쟁이 사라진 탓에 대부분의 중개업소가 영세하고 신뢰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중개보수가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달부터 중개서비스와 수수료체계를 개선할 계획인데, 국민이 바라는 수준의 투명하고 공정한 중개시장을 만들고자 한다면 개선을 넘어 혁신이 필요하다.
1984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동산중개는 전문적 영역으로 온전히 평가 받지는 못했었다. 조선시대 부동산중개인은 '거간'으로 불리며 대도시에서 토지나 주택의 거래를 중개했다. 이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소위 복덕방이었으니, 복(福)과 덕(德)을 나누는 곳이란 의미다.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마을 이장이나 객주가 그때 그때 거간이 되는 일종의 파트타임이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전히 동네 노인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겨졌던 부동산 중개가 제도화된 것은 '공인중개사'라는 자격증이 생기면서부터다. 1985년 치러진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약 16만 명이 응시해 6만 여명이 자격을 취득했다. 기존 중개인들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기 위해 무척 쉽게 출제하는 바람에 무려 38%의 합격률이 나온 것이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때부터 공인중개사는 전문가로서 중개를 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 받았다.
공인중개사의 전문성은 정보와 지식에서 나온다. 부동산은 고가이고 물건마다 특성이 다르고 거래과정이 복잡해 일반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또 부동산 관련 정책과 제도는 수시로 변해서 거래 당사자가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거래가 잘못되면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이처럼 중개는 관련 법에 대한 지식과 복잡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행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다.
또 부동산중개인은 시세, 절세방법, 수급상황, 시장 전망 등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최적의 거래조건을 제시한다. 거래 당사자들은 중개인이 제공하는 조언을 통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거래사고로 발생하는 재산손실 위험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중개인의 역할과 수수료의 정당성은 정보와 전문 지식으로부터 나온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개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 중개인들이 독점했던 정보 대부분을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시세는 물론 실거래가정보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으며, 세제나 법률관련 맞춤형 정보도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중개인이 보유한 정보와 지식의 가치가 하락했다. 내비게이션의 보급으로 종이 지도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수수료는 중개인이 제공하는 전문적인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데, 왜 소비자들은 중개수수료가 비싸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일까. 특히 최근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수료가 폭증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중개수수료 수준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감정평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수수료는 자산가격이 높을수록 증가한다. 고가일수록 점검 사항이 많아지고 사고 발생 시 부담해야 할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개수수료에 위험수당을 포함하는 것도 합리적일까. 법률상으로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거래당사자에게 손실이 발생하면 배상책임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 중개사고가 발생했을 때 중개사가 그 손해에 대해 배상하고 책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계약 당시 세입자를 대리해 꼼꼼하게 점검하고 위험성을 알릴 의무가 있음에도, 전월세 사기에 대해 중개사가 책임을 졌다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다.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를 중개할 때도 고작 1억 원짜리 공제증서를 첨부한다. 그 돈은 방 한 칸은 고사하고 화장실 하나 값도 안된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중개수수료에 위험수당을 포함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개보수 논쟁 시 자주 등장하는 외국의 수수료도 살펴보자. 미국은 주로 매도자만 수수료를 부담하는데 협상을 통해 6% 내외에서 정해진다. 한 부동산 정보회사(Real Trans)에 의하면 평균 부동산 수수료는 2018년 5.03%에서 2019년 4.96%로 하락했다. 미국의 경우 한쪽만 지불하므로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2.5~3%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은 통상 1.2%(1%+VAT) 내외에서 결정되며 거래금액이 크면 협상을 통해 수수료율을 조금 낮출 수도 있다. 싱가폴에서는 주택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2%의 수수료가 관행이다. 싱가폴의 공공주택인 HDB 재판매 아파트의 경우 매도자는 2%, 매수자는 1% 수준이며 정해진 규칙은 없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우리보다 수수료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비스의 양과 질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은 수수료가 비싼 만큼 중개인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도인 측 중개인은 사진과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서 매물등록(Listing)을 하고 집이 팔릴 때까지 수개월 동안 마케팅을 한다. 집을 보여주는 행사(Open house)나 광고비 등은 모두 중개인이 부담한다. 매수인 측 중개인도 집을 구매할 때까지 많게는 수십 채의 집을 함께 다니면서 점검하고 대출조건이나 적절한 가격에 대해 조언한다.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는 미국에서 중개인이 들이는 비용과 시간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독주택은 아파트와는 달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드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하니 수수료는 오히려 더 적은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로우테크 분야인 부동산 중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혁신 요구에 직면했다. 단지 수수료를 낮추고 부가서비스를 구체화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소비자는 이미 인공지능(AI)과 함께 빅데이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국내외 프롭테크기업들의 막강한 데이터와 첨단기술이 중개시장을 바꾸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는 질로우(Zillow), 퍼플브릭(Purple Bricks)과 같은 프롭테크 회사가 저렴한 수수료로 온라인 중개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중개시장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중개업계가 그 역할과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서는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 기회에 서비스수준의 향상과 거래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혁신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맞서기 보다는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반값 중개와 프롭테크가 왜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디지털전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체계적인 온-오프라인 중개시스템을 갖추고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쇼핑몰을 아무리 규제해도 소비자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전통시장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전통시장의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것이 좋은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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