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파업은 막았지만 ... 합의 이행은 '산 너머 산'

입력
2021.09.02 17:20
수정
2021.09.02 21:22
10면
구독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철회된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파업에 대비해 준비해둔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1

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이 철회된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의료진이 파업에 대비해 준비해둔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간 노정협상이 막판 진통을 겪은 끝에 2일 새벽 2시쯤 타결됐다. 총파업을 예고한 오전 7시를 5시간가량 남겨둔 시점에 이뤄진 극적 타결이었다. 파업은 철회됐고, 우려했던 코로나19 의료현장 혼란은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양측이 합의한 인력 충원과 수당 현실화 등을 뒷받침하려면 정부 내 부처 간은 물론, 국회와 의료계 등과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번 합의를 두고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13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마련된 합의사항인 만큼 성실하게 협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이다. 보건의료노조도 “합의 이행에 정부가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간호사 업무부담 줄이는 방안은 신속 이행

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가 협상 타결 직후 내놓은 합의문을 보면, 코로나19 극복과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처우개선 등의 계획이 담겨 있다.

가장 빨리 이행돼야 할 사항은 당장 코로나19 현장에 필요한 △감염병 대응 인력기준 △생명안전(감염관리)수당이다. 코로나19 환자의 위중한 정도별로 간호사를 배치하는 기준을 이달 안으로 만들고, 감염 위험에 따라 별도 수당을 지급하는 건 내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인력기준안은 빨리 만들어 현장 의료 인력의 부담을 줄일 것이고, 생명안전수당은 하반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확정돼 있다"고 말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13차 노정실무교섭이 타결된 뒤 서명한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13차 노정실무교섭이 타결된 뒤 서명한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 신설 △규칙적인 교대제 도입은 각각 2023년, 2022년 3월 시행으로 결론났다. 노조는 그간 간호사 1명이 돌보는 실제 환자 수를 명확히 규정하고 상한선을 정해달라고, 순환근무가 예측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이 정책관은 “쉽진 않지만 제도 개선으로 추진 가능하다”며 특히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기준은 내년 중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논의는 결국 간호사 수를 늘려야 하는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소규모 병원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의사증원, 지역공공병원설립 등은 '난제'

당장 해법이 뾰족하지 않는 사안들도 이번 합의문에 포함됐다. 이를테면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과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사 증원 △의사와 진료지원인력 면허 업무범위 규정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이다.

정부도 이 같은 방향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의사단체들은 계속 반발해왔던 문제들이다. 의사 증원은 지난해 9·4 의정합의 당시 의정협의체를 통해 계속 논의키로 한 문제이고, 의사 면허 업무범위를 규정해 적용하는 시기를 2023년으로 명시해 둔 부분도 갈등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내용에 대해서는 '의정 및 사회적 논의를 거친다'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이 내용이 합의문에 담긴 배경에 대해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에 연결된 사안인 만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의정협의체에서 논의될 사안을 일방적으로 노정합의에 끌어들였다"며 "파업을 막겠다는 미봉책 마련에 급급해 실행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일방적인 타협을 했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보건의료노조 "지키지 않으면 대국민 사기극"

여기에다 △국립대병원 소관부처를 복지부로 이관 △2025년까지 지역별 공공병원 추가 설립 등의 합의 내용 역시 실현 가능성이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대병원 부처 이관은 교육부는 물론 병원의 반대가 심한, 오래된 문제다. 공공병원 설립은 합의문에다 울산·광주·대구·인천·동부산·제천 등 지역명까지 명시해뒀지만, 지자체나 재정당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당장 복지부는 "일부 사안은 재원 투입이나 법령 개정, 관계부처와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변경 가능성을 열어놨다. 보건의료노조 측은 “복지부와 공감대를 이뤘던 건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며 신뢰를 얘기했기 때문"이라며 "합의를 지키지 않으면 대국민 사기극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2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의료원 주차장 건물에 노조 파업 투쟁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새벽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협상이 타결돼 전국 의료 총파업 사태는 피했지만, 한양대의료원 노조는 이날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뉴스1

2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의료원 주차장 건물에 노조 파업 투쟁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날 새벽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협상이 타결돼 전국 의료 총파업 사태는 피했지만, 한양대의료원 노조는 이날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뉴스1

한편 노정협상이 타결됐는데도 이날 서울, 대전·충남, 광주·전남 지역 일부 병원 노조는 인력 확충과 근무환경 개선 등을 이유로 파업을 강행했다.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한양대의료원(한양대병원·한양대 구리병원)에서는 약 1,000명, 고려대의료원(고려대 안암·구로병원)에서도 약 400명, 부산대병원에서 394명의 보건의료노조 소속 조합원이 이날 파업을 벌였다. 복지부의 보건복지상담센터 공무직 노동자 130여 명도 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임소형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