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률은 낮췄지만… 강윤성 만행에 허점 드러난 전자발찌

입력
2021.09.03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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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신호 보내도 범행 간파엔 한계
법무부·경찰 제도운영 공조도 뻐거덕
다양한 범죄자 일률 통제 효과도 의문

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56세 강윤성. 서울경찰청 제공

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56세 강윤성. 서울경찰청 제공

강윤성(56)씨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간 재범률을 낮추는데 효과가 있다고 인식돼온 전자발찌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2016~2020년 전자감독대상자의 동종 재범률(성폭력 2.1%, 살인 0.1%, 강도 0.2%)은 전자감독 도입 전인 2003~2007년(성폭력 14.1%, 살인 4.9%, 강도 14.9%)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허점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전자감독의 양과 강도를 높이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사안별로 현실적 문제를 따지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①범죄 징후, 알 수 없었나

강씨가 두 차례 야간외출제한 명령을 위반한 사실을 전자발찌를 통해 적발하고도, 당국이 범죄 징후를 포착하지 못한 점은 이번 사건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강씨가 출소 한 달 만인 올해 6월 외출제한 명령을 위반했지만 3개월이 지나서야 출석 조사를 받았다. 두 번째 명령 위반은 살인을 저지른 직후 일어났지만, 보호관찰소는 현장 출동 대신 전화로 출석 조사를 통보하는 데 그쳤다. 즉각적인 대면 조사가 이뤄졌다면 강씨의 범의를 간파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보호관찰관이 감독 대상을 만나 개별화된 관리를 하는 것이 전자감독의 본래 목적인데, 두 번이나 징후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당국이 전자발찌가 알리는 모든 이상 신호에 원리 원칙대로 대응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실제 강씨가 두 번째 명령을 위반했을 때 보호관찰관이 즉각 출동했지만, 강씨가 "약을 사러 편의점에 갔었다"면서 곧바로 귀가하자 출동 계획은 철회됐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자감독 대상자와 담당 보호관찰관 사이 라포(신뢰 관계) 형성이 안 되면, 행적조사 때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원칙론이든 현실론이든, 인력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는 점에선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2016~2019년 4,000명대를 유지하던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가 지난해 6,000명대, 올해 8,000명대로 급증한 만큼, 관리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법무부가 현실을 모른 채 전자감독 대상을 늘리면서 홍보에만 치중하다 보니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질타했다. 김지선 위원은 "가석방자 전자감독 확대, 1대 1 전자감독 실시 등 최근 변화도 인력 부족을 심화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②초동 조치 개선점은?

전자발찌 제도 운영 과정에서 법무부(보호관찰소)와 경찰의 초동 조치와 공조가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이 강씨의 상세한 전과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정황이나, 보호관찰소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강씨의 발찌 훼손 당일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하러 갔다가 "내일 오라"는 말을 듣고 물러난 점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양 기관의 정보 공유 매뉴얼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담당자들의 의지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2008년 전자감독제 시행 이후 십수년간 경찰과 보호관찰소가 공조 경험을 쌓은 게 사실이고, 매년 훈련을 진행하는 등 관련 제도도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보호관찰관이 올해 6월부터 특사경 자격을 부여받아 직접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전자발찌 훼손 사건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체포영장을 신청하는 등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③전자발찌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성범죄 전력자의 특성을 감안해 보다 유연하고 실효성 있는 관리 제도를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맥락에서 강씨와 같은 상습범은 애초 전자발찌만으로 관리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상습범을 감독 위주로 압박하면 자포자기하면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지속적인 재범 위험성 평가와 그에 맞춘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씨의 경우 보호감호제도의 적용을 받다가 가출소해서 범행을 저지른 만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전과자 관리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보호감호제도가 이중 처벌 논란으로 2005년 폐지된 터라, 그 전에 보호감호 처분을 받은 이들은 감호 기간을 마치고 출소하면 당국의 관리망을 벗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감호 종료 전 출소시켜 보호관찰 대상에 편입하는 편법을 쓰고 있지만, 이렇게 사회에 나온 이들 중엔 강씨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보호수용제를 비롯한 대안도 신중하게 제기되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호감호는 사실상 형을 집행하면서 간판만 바꾼 꼴이라 결국 폐지됐다"면서 "보다 인권친화적 교화 기관을 만들어 재범 위험성이 높은 이들이 무분별하게 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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