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슬램' 사과농부의 원대한 꿈

입력
2021.09.03 00:00

경남 거창군 땅강아지 사과밭 김정오 대표(왼쪽)와 가족들.


조선 후기, 달마다 농가에서 해야 할 일을 순서대로 알려주는 노래인 '농가월령가'를 지은 정학유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다. 정학유가 이러한 훌륭한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에는 아버지의 따스한 조언이 담긴 편지가 있었다. "네가 닭을 키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서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연구해야 하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번식력이 우수하고 좋은 품질의 닭을 키워야 한단다." 즉, 세상 모든 일이 공부 아닌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 있었다.

현대에도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1등 과수원을 일군 거창군 '땅강아지 사과밭'의 김정오 대표가 있다. 그는 사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통해 최고 농업인에게 주어지는 '명인', '마이스터', '신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취득했고, 사과 분야의 유일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또한, 땅강아지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그의 과수원은 대한민국 100대 스타팜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아침 사과는 금(金)사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건강에 좋은 과일이다. 특히 껍질에 많은 영양소가 함유되어 있지만 대부분 소비자는 잔여 농약에 대한 걱정으로 껍질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 대표는 건강한 땅에서 키운 사과를 나무에서 바로 따 옷소매에 스~윽 한 번 문질러 껍질째 먹어도 안심할 수 있는 '친환경 사과'를 재배했다. 이를 위해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최소한의 농약과 과학적인 나무 관리, 그리고 직접 조제한 방제약을 사용하여 병해충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당시 질 떨어지는 과일을 보이지 않게 포장하는 '속박이' 성행으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지자 그는 사과박스에 본인 사진을 넣는 품질실명제를 실시하며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현재 김 대표는 그가 겪은 경험과 지식을 다른 농민들과 나누기 위해 사과 재배 기술학교를 운영하며, 수준별 실습수업을 통해 재배 비법과 경영비 절감 컨설팅, 사과 가공제품 개발 노하우 등을 전수하고 있다.

사과 재배의 명인인 그가 처음부터 사과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15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어린 시절 귀했던 사과를 실컷 먹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1994년에 사과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 임대한 사과밭은 5년을 기다려야 수확을 할 수 있었고, 주변 사람 모두가 농사를 반대했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사과를 공부하면 할수록 사과 농사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샘솟았고, 다양한 시도와 개발을 통해 현재 최고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거창의 땅강아지 사과밭에는 벌써 가을이 찾아왔다. 과수원 입구에서부터 주렁주렁 달려 있는 빠알간 홍로 사과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김 대표에게 농사란, 아침에 해가 뜨면 시작해서 저녁에 해가 지면 일을 마치는 것이다. 삶 자체가 농사인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3대가 동행하는 사과밭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대학에서 사과를 전공한 아들이 농업 후계자가 되면서 그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김정오 대표는 "1대인 내가 농장을 스케치하고, 2대인 우리 아들이 농장을 색칠하며, 3대인 우리 손자가 최고의 사과 농장을 완성하여 후손에게 멋있는 농장을 물려주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사과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열정이 거창한 꿈으로 완성되기를 응원한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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