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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하면 젤라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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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시를 기억하는 단어는 저마다 다르다. 잊은 듯 살지만 잊히지 않는 첫사랑이 있다면 두오모에서 만나자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약속이, 예술과 권력의 특별한 관계가 궁금하다면 르네상스의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부터 떠오르는 도시가 피렌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이 우아한 이름들을 모두 물리치고 내가 피렌체를 기억하는 단어는 '젤라토(Gelato)'다.
이런저런 재료를 섞어서 얼렸을 뿐인데 언제나 상상을 한 발짝 넘어서는 쫀득쫀득한 질감, 시원하게 입술에 닿았다가 꿈처럼 사라지는 기분 좋은 달콤함. 젤라토를 들고 선 사람들은 항상 눈이 커진 채로 웃고 있었다. 이곳 피렌체의 연금술사가 르네상스시대에 처음 젤라토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우리가 저마다 가슴에 품은 냉면집이 있는 것처럼 피렌체 사람들은 자신만의 젤라토 가게 추천 목록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젤라토 가게는 산타 트리니타 다리 근처에 있다. '신곡'의 작가 단테가 평생 마음에 담은 연인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마주쳤지만, 인사 한 번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쓸쓸히 떠나 보낸 바로 그 자리다. 아홉 살에 만나 첫눈에 반한 후 청년이 되어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 아마도 피렌체를 더 고즈넉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아르노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었을 게다. 다리 옆 단골 가게에서 유명한 건 '세사모 네로(Sesamo Nero)'. 우리 말로 하면 '검은 깨'로 만든 거무튀튀한 젤라토인데,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마주쳤을 그 모퉁이에서 흑임자 젤라토를 먹노라면 이 색깔처럼 시커멓게 속이 타 들어갔을 열여덟 살의 단테가 떠오른다.
그 강변 북쪽에는 단테의 집도 있다. "창문을 열면 베키오 궁전의 탑이 보인다"는 구절로 추측해 복원한지라 실제 생가는 어디라는 설들도 많다. 너무 익숙해 가깝게 여겨지지만 단테는 1265년생, 우리로 치면 머나먼 고려시대에 태어난 사람이니 말이다. 읽진 못해도 제목만큼은 무수히 인용되는 세계적인 명저를 남긴 시인답게, 집 앞 작은 광장에는 단테의 흉상은 물론 바닥에 새겨진 그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물을 뿌리며 팁을 받는 할머니까지 있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피렌체의 높은 문화 수준의 대변인처럼 단테가 쓰일 때면 기분이 좀 묘하다.
사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존재였다. 전쟁을 막으러 로마에 간 사이 정치적인 반대파가 재판을 진행하고 돌아오면 화형이라는 끔찍한 처벌까지 내리는 바람에, 그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탈리아반도 저편의 도시 라벤나에서 생을 마쳤다. 지금이야 하나의 나라지만 도시마다 군주가 다른 시절이었으니, 단테 삶의 3분의 1은 난민 신분이었다.
19년을 떠돈 단테를 따뜻하게 맞아 준 라벤나에서 그는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대서사시 '신곡'의 마지막 편을 마무리한다. 낯설었던 도시 라벤나가 불멸의 명작을 완성한 보금자리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 도착한 난민 중에는 어린 아이도 있었고 갓 태어난 아기도 있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 '저마다의 신곡'을 쓸 수 있도록 우리는 따뜻한 라벤나가 될 수 있을까. 단테가 죽기 직전 쓴 마지막 문장을 소리 내어 다시 읽어 본다.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뭇별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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