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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비밀리에 미국인 호위하고… 바이든은 아프간 정부군에 ‘엄지 척’

입력
2021.09.01 20: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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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승리로 끝난 아프간전 비화들]
미국, '탈레반 보호' 속에 자국민 대피 작전
카불 공항 '비밀 게이트'까지 탈레반이 인솔
바이든, 카불 함락 3주 전 아프간 대통령에
"당신에겐 최고의 군대"... 상황 오판 발언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점령한 지 이틀 후인 지난달 17일,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 아프간을 떠나려는 수백 명의 주민이 몰려들어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점령한 지 이틀 후인 지난달 17일, 카불 국제공항 외곽에 아프간을 떠나려는 수백 명의 주민이 몰려들어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상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린 가운데, 미군의 아프간 철수 과정 이면에서 벌어진 갖가지 비화(秘話)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이 자국민 대피 작전을 수행할 때 20년간 궤멸 대상으로 여겼던 탈레반의 ‘적극적 보호’를 받는 아이러니한 일이 빚어지는가 하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직전에도 아프간 정부군에 대해 “최고”라는 칭찬을 하며 상황을 오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으로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법한 뒷이야기이자, ‘아프간전은 실패한 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은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미군이 탈레반과 비밀 합의를 통해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의 지정된 ‘비밀 게이트’로 미국인들을 호위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미국인들이 사전에 ‘공항 인근 OOO에 모이라’는 통보를 받아 집결 장소에 도착하면, 탈레반이 출입 자격 서류를 확인한 뒤 그들을 카불 공항의 ‘비밀 게이트’ 근처까지 데려다 줬다는 것이다. 그 이후엔 게이트에 배치된 미군이 공항 내부로 미국인들을 인솔했다고 한다.

지난달 15일 탈레반의 카불 장악에 허를 찔린 미국은 공항 내부만 통제하고 나머지 지역은 탈레반에 통제권을 넘겨줬다. 당초 탈레반은 “당신들(미군)이 당분간 카불 치안을 책임져도 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하겠다”고 했는데, 미국이 카불 전 지역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공항 내부’만 맡는 것으로 양측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데에만 미국이 온 신경을 쏟았다고 볼 만한 대목이다.

지난 6월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미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미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이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함락’ 3주 전쯤인 7월 23일, 아슈라프 가니 당시 아프간 대통령과의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 아프간 정부군을 ‘최고의 군대’라고 치켜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정상의 통화 녹음 및 녹취록을 입수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가니 대통령에게 “당신에겐 최고의 군대가 있다. (탈레반 대원은) 7만~8만 명인데, 당신은 잘 무장되고 명백히 잘 싸울 수 있는 30만 명(의 정부군)을 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군 규모는 허위 등록 인원까지 포함한 통계 수치로, 실제 병력은 통계의 6분의 1 수준이라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문제는 양 정상의 통화 당시, 탈레반은 이미 아프간 전체 주도(州都)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파죽지세였던 탈레반의 공세에 각 지역의 아프간 정부군은 잇따라 항복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언급을 한 셈이다. 심지어 그는 “아프간 정부의 생존과 유지, 성장을 위해 우리도 외교·정치·경제적으로 계속 강력히 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로이터는 “통화한 지 23일 후 아프간 정부가 붕괴할 것이라고 바이든은 결코 예상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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