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신앙심으로 피어난 황톳빛 예술혼

입력
2021.09.04 10:00
<171> 볼리비아 세계문화유산?
치키토스 예수회선교단 순례길 - 산라파엘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진흙탕 순례길이 그랬다. ⓒ강미승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볼리비아 세계문화유산 순례길, 뒷집 이웃이 소리만 질러도 뉴스에 나올 것만 같은 조용한 마을 산호세데치키토스(San Jose de Chiqitos)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어렵게 금요일 표를 구해 다음 행선지인 산라파엘(San Rafael)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탑승하고 나서야 ‘그깟’ 비 때문에 수요일 버스가 중단된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탄력 없는 바퀴와 흙탕길 사이에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버스 기사는 자동차 경주대회에 출전한 듯 긴장하고 있었다. 잘못 빠지면 헤어날 길 없는 진흙탕을 진땀을 흘리며 헤쳐나갔다. 버스가 붉은 흙을 흠뻑 뒤집어쓴 뒤에야 산라파엘(San Rafael)에 닿았다.

이 마을은 오직 성당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산호세데치키토스보다 더 작고 조용한 동네였다. 인구는 2,000명 남짓, 이방인을 의식하는 시선은 더욱 또렷했다.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음 행선지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이다. 주민들은 산이그나시오(San Ignacio)행 버스가 매일 오전에 있다고 했다. 한편으론 안심했고, 다른 한편으론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낙담했다. 성당 찍고 다음 마을로! 이런 식의 패키지 투어는 늘 기피하는 편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순례길 출발 도시인 산타크루즈의 여행사가 예수회 선교단 관련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태워달라고 조를 뻔했다. ⓒ강미승


산라파엘의 첫인상이자 끝 인상. 크게 욕심내지 않고 조용히 살 수도 있다는 소박함을 깨닫게 해준다. ⓒ강미승


1745년과 1949년 사이에 지어진 산라파엘 예배당. 프레스코화는 세월의 힘을 얻어 깊이를 더한다. ⓒ강미승


멀리 있는 그림을 클로즈업할수록 감탄하게 된다. 어떤 염원이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나. ⓒ강미승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의 시설은 형식이 비슷하다. 성당 앞 대중을 위한 광장(plaza)은 문을 통해 실내의 작은 광장과 정원으로 이어진다. ⓒ강미승

세계유산에 빛나는 치키토스 예수회 선교단 마을의 가치는 시대적 이념과 시간의 횡포 속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에 있다. 18세기 중후반 예수회에 탄압이 가해졌고, 이 선교단 시설 대부분이 버려지다시피 했다. 19세기 중반 들어서는 선교활동 자체가 사라질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이 있으니 선교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다. 당시 예수회는 인디오 문화와 접목한 성당을 지었고, 원주민과의 소통 수단으로 음악을 택했다. 기독교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한 주민들은 여전히 삶을 일궈갔다. 시대는 또 변했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건축학적 독창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 활동이 개재됐다. 산라파엘의 선교단 시설은 최대 수혜자였다.

성당 입구의 압도적인 그림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췄다. 팔다리에 전율이 느껴졌다. 산호세데치키토스의 건축물이 백과사전 같다면, 산라파엘의 성당은 프레스코화의 클라이맥스 같았다. 양각된 벽면에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 백색 도료 위에 황토색으로 섬세하게 그린 꽃과 동물, 천사와 성인이 조화롭다. 평면적인 벽이 하나의 완벽한 공간처럼 입체감을 더했다. 다정하게 중세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착각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종탑과 광장, 예배당 등 여러 시설이 혼재한 복합건물이다.

1998년 완공된 산이그나시오 예배당. ⓒ강미승


1998년 완공된 만큼 시선을 사로 잡는 화려함으로 도배돼 있다. ⓒ강미승


볼리비아에서 번화가의 기준은 오토바이 기사의 숫자로도 판단된다. ⓒ강미승


인구 3만의 도시에 댄스파티 광고가 넘쳐난다. 간혹 이렇게 현장 도면을 공개하기도 한다. ⓒ강미승


다음 기사 예고편. 이 티켓은 곧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린다. ⓒ강미승

다음날 세 번째 행선지인 산이그나시오(San Ignacio de Velasco)에 도착했다. 산라파엘의 현대판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막 상경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걸까. 이곳 역시 1748년 예수회가 선교 활동을 펼친 곳이지만 세계문화유산엔 들지 못했다. 예배당은 층고가 높고 갓 페인트를 칠한 듯 깔끔해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한 기분이 들었다.

산이그나시오는 순례길의 중간 쉼터이자 브라질 국경과 가까운 곳으로, 이 순례길에서 가장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인구는 3만 명이 넘는다. 간만에 사람 구경도 하고 자본주의의 향기도 맡았다. 시장에선 고래고래 고함소리가 넘치고, 여기저기서 오늘 밤 열릴 댄스파티를 홍보하고 있었다.

주위가 혼란해도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 우선 다음 행선지인 콘셉시온(Concepcion)행 버스 티켓부터 구해야 했다. 이곳에서 182㎞ 떨어진 곳이다. 여러 버스 회사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출발지인 산타크루즈로 되돌아가는 교통편 밖에 없었다. 애초에 순례 코스를 시계방향으로 잡았으면 수월했을 것을. 자초한 재앙이니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딱 한 군데에서 우릴 반겼다. 다음날 오후 6시 출발, 손글씨가 근사하게 쓰인 티켓을 얻었다.

이리 되면 이 도시를 누빌 시간을 하루 더 번 셈인데…. 승전의 기쁨에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모기향을 담은 까만 비닐봉지를 달렁거리며 주머니 속 댄스파티 입장권을 매만졌다. 변방의 무도회장은 어떤 모습일까. 스텝을 밟기에 좋은 옷으로 차려 입을 생각이었다. 그날 밤, 예상치 못한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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