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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메이션-크런치롤 합병, 애니 산업 대형화 신호탄

입력
2021.09.01 14:48

시청자는 다양한 작품 손쉽게 즐길 기회지만
독점기업 등장은 제작 생태계에 악재될 수도

퍼니메이션 주요 주인공들. /퍼니메이션 홈페이지

퍼니메이션 주요 주인공들. /퍼니메이션 홈페이지

지난달 소니가 미 AT&T 자회사 ‘크런치롤’을 인수한 것을 두고 미국 IT 전문지 ‘와이어드’는 8월 31일(현지 시간) “애니메이션(이하 애니) 산업의 대형화 시대가 시작됐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소니는 지난 9일 11억7,500만 달러(약 1조3,480억 원)를 투자해 크런치롤을 인수했으며, 소니 픽처스 산하 퍼니메이션의 자회사가 된다고 발표했다. 2006년에 설립된 크런치롤은 아시아권 애니와 드라마를 스트리밍하는 기업이다. 가입하지 않아도 여러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으며, 높은 화질을 지원해 인기를 끌고 있다. ‘신의 탑’과 ‘갓 오브 하이스쿨’ ‘노블레스’ 등 한국의 유명 웹툰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한 스트리밍 업계에서는 워너미디어가 디스커버리를, 디즈니가 21세기 폭스를, 비아콤이 CBS를 합병하는 등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물결이 애니메이션 산업도 뒤흔들고 있다. 와이어드는 애니 업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퍼니메이션과 크런치롤의 합병은 애니 산업과 영향력이 틈새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변화한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2006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해온 크런치롤과 1994년 설립돼 2016년부터 스트리밍을 시작한 퍼니메이션은 모두 일본의 애니 TV 시리즈를 미국 등 서구에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왔으며, 소수 마니아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애니가 대중화하면서 넷플릭스, 아마존 등 대형 OTT 들도 일본 애니를 방송하기 시작해 장르별 시청자 수가 3위에 오를 만큼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08년 드래곤 볼이 처음 케이블 방송을 타기 시작한 이후 2019년까지 11년 만에 일본에서 제작되는 애니 시리즈는 매년 50% 씩 증가하고 있을 정도다. 또 넷플릭스가 거액을 투입하며 애니를 일본 외 전 세계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애니 시장의 경쟁자였던 퍼니메이션과 크런치롤의 합병으로 애니 공급 가격이 인상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최고 인기 애니 시리즈의 경우 북미 방송권이 에피소드 한 편당 25만 달러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또 소니가 사실상 일본 애니의 독점적 공급자가 되면서 애니 업계 종사자들의 처우가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애니 시청자들은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애니를 즐길 수 있겠지만, 애니 업계에게는 우울한 뉴스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영오 기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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