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지나친 낙관 유감

입력
2021.09.02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삼국지연의 삽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 모여 결의를 다지는 모습.

삼국지연의 삽화.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 모여 결의를 다지는 모습.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면 83만 대군을 이끌고 나섰던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는 불과 1,000여 명의 패잔병을 이끌고 귀향하면서도 특유의 자신만만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가 "나 같으면 여기에 매복을 해놨을 텐데"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는 장면은 자신감인지 자만감인지 헷갈릴 정도다.

삼국지연의 주인공이 유비인 만큼, 조조의 이러한 호탕한 세 번의 웃음 뒤엔 예외 없이 매복해 있던 조운, 장비, 관우가 나타나 조조 측 군대를 혼비백산하게 한다. 조조가 이때 세 번이나 크게 놀라 그 충격으로 죽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조조삼소(曹操三笑· 조조가 세 번 웃다)라는 말이 '지나친 자만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유다.

명나라 때 쓰인 소설책 얘기를 꺼낸 것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도 본예산에서 지나친 자신감 내지는 안이한 낙관론이 보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확장재정 정책을 써왔는데, 이 탓에 내년도 국가채무는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국민 1인당 2,000만 원의 빚을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규모도 그렇지만 과거 정부에 비해 빚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내년부터 경기가 회복돼, 세수가 증가하고 이는 재정건전성 개선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나친 낙관이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했다. 기관별 경제전망과 전문가 자문을 충분히 고려했고, IMF외환위기 뒤 세수 증가율이 껑충 뛰었다는 사례도 거론했다.

모든 전문가가 정부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본지가 접촉한 다수 전문가는 정부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각종 변이 바이러스로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과거 사례와 단순 비교는 무리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실 문 정부는 이미 지나친 자신감과 낙관으로 큰 실패를 두 번이나 겪었다. 정권 초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큰소리, 그리고 백신 확보가 급하지 않다는 안이함이 불러낸 뼈아픈 경험이다.

대통령의 '부동산 자신' 발언 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안 산 국민은 이른바 벼락거지로 자칭하는 처지가 됐다. 백신 역시 K방역 성과에 취해 확보 타이밍을 놓쳐, 주요국들이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지금도 백신 접종완료율은 20%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물론 비관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적절한 자신감과 낙관적 전망은 어려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냉철한 현실 분석과 위기 극복을 위한 치밀한 준비가 동반됐을 때 가능한 얘기다.

우리 정부는 앞서 두 번이나 너무 성급하게 웃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재정 문제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조조가 세 번째 웃고 만난 적장은 관우였다. 조조는 그에게 목숨을 빌어 겨우 위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같은 실수를 세 번 반복한 정부에 국민들이 관우처럼 너그러울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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