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13년 전 바이든 구출한 아프간 통역사의 호소

입력
2021.09.01 16:46
수정
2021.09.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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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프간서 조난 당한 바이든 구조 '인연'
탈레반 장악 후 아프간 탈출 시도했지만 불발
은신처 숨어... 美 "당신의 공로 존중, 구출할 것"

2008년 2월 20일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던 척 헤이글(왼쪽 첫 번째) 조 바이든(왼쪽 네 번째) 존 케리(맨 오른쪽) 당시 상원의원 등의 모습. 이들은 눈보라로 조난을 당했다가 미군에 의해 구조됐다. 미 국무부 제공

2008년 2월 20일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던 척 헤이글(왼쪽 첫 번째) 조 바이든(왼쪽 네 번째) 존 케리(맨 오른쪽) 당시 상원의원 등의 모습. 이들은 눈보라로 조난을 당했다가 미군에 의해 구조됐다. 미 국무부 제공

“바이든 대통령님, 저와 제 가족을 구해 주세요,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아프가니스탄 통역사 모하메드(가명)가 보낸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아프간을 탈출하지 못하고, 탈레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호소였다.

1일 이 사연을 공개한 WSJ에 따르면, 모하메드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인연’은 13년 전 시작됐다. 2008년 2월 바이든 당시 미 상원의원과 존 케리ㆍ척 헤이글 등 동료 의원 일행은 아프간에서 블랙호크 헬기에 탑승했다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외딴 계곡에 비상 착륙을 했다. 하필 그 지역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의해 장악된 곳이었다. 긴급 구조를 위해 미군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 육군 통역사로 근무하던 모하메드도 구조 작전에 투입됐다.

미군이 조난 지점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탈레반과 총격전을 100회 이상 벌였을 정도다. 하지만 통역은 물론, 현지 주민들 협조까지 잘 이끌어낸 모하메드의 맹활약 덕에 구조 작전은 성공했다. WSJ는 “모하메드가 있었기에 바이든 일행은 무사히 미군 기지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11월 미 대선에 부통령 후보로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이 일화를 수차례 언급했다. 유세 현장에서 그는 “알카에다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나와 함께 아프간으로 돌아가자. 내 헬기가 착륙했던 저 산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알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그의 뇌리에 박힌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겐 모하메드가 ‘생명의 은인’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15일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 이후, 바이든 대통령과 모하메드의 처지는 뒤바뀌었다. 모하메드와 가족의 목숨은 위태로워졌다. 카불을 떠나려 마음 먹은 그는 아내와 네 자녀를 데리고 카불공항을 향했다. 미군 항공기 탑승을 요청했으나 미군한테서 돌아온 대답은 “당신은 된다. 아내와 자녀들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6월 미국에 특별이민비자를 신청했지만 모하메드가 일하던 방위산업체에서 필요한 서류를 분실하는 바람에 거절당한 데 뒤이은, 사실상 미국으로부터 두 번이나 퇴짜를 맞은 셈이다. 모하메드는 현재 은신처에 숨어 있다며 “탈레반이 우리를 찾아내지 못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사연이 전해지자 미 참전용사들은 ‘모하메드 구하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008년 아프간에서 모하메드와 함께 일했던 육군 참전용사 숀 오브라이언은 “한 명의 아프간인만 도울 수 있다면 (모하메드를) 선택하라”고 촉구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아프간 조력자를 국외로 빼내는 데 전념하고 있다. 당신(모하메드)을 구출할 것이고, 우리는 당신의 공로를 존중한다”는 응답을 보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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