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美 철수작전 막전막후… 탈레반 점령 후 '악몽의 2주' 여파

입력
2021.09.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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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 시한보다 24시간 먼저 철수 작업 종료
불과 며칠 전 결정... 보안 위해 발표도 안해
공항 테러가 결정타... "하루라도 먼저 떠나자"

3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미국 공군 수송기가 자국인과 미군 등을 태우고 이륙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철군 시한 종료(31일)를 24시간가량 남긴 이날 오후 11시59분, 철수 작전을 모두 마무리했다. 카불=AFP 연합뉴스

3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미국 공군 수송기가 자국인과 미군 등을 태우고 이륙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철군 시한 종료(31일)를 24시간가량 남긴 이날 오후 11시59분, 철수 작전을 모두 마무리했다. 카불=AFP 연합뉴스


“이슬람국가(IS)의 테러 공격이 또 벌어질 가능성이 하루 동안 더 이어진다는 리스크(위험)가 더욱 크게 드리워졌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관리(미 일간 뉴욕타임스 보도 中)

지난달 30일 오후 11시59분(현지시간) 모든 임무가 끝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작전은 극도의 보안 속에, 그리고 매우 급박하게 이뤄졌다. 당초 철수 완료 예정 시한이 31일이었던 만큼, 24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하루 먼저 대피 작전을 마친 것이다. 미국은 “미군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인 대피 작전”(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었다는 성공적 평가를 내렸으나, 뒤집어보면 지난달 15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에 허를 찔린 미국이 보름 동안 얼마나 당혹감과 긴장감 속에 우왕좌왕했는지 방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美, 극비 보안 속 '철수 종료' 작전 시행

이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의 아프간 철군 완료 작업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진행됐다. 미국은 별도 발표 없이 자국인과 군 병력, 무기 등이 마지막으로 카불에서 떠나는 시점을 애초 시한(31일 오후 11시59분)보다 24시간 앞당겼는데, 이런 결정은 불과 며칠 전에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군 관계자 2명을 인용해 “군 수뇌부가 안보 위협 상황이 발생하거나, 수송기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완충장치를 마련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군 철군 시한 준수를 재촉해 온 탈레반에도 따로 ‘철수 종료 시점’을 알리지 않았다. 케네스 매켄지 미 중부 사령관도 미군의 마지막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이 지난 후에야 브리핑을 갖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 아프간 통치권을 쥐게 된 탈레반의 협조보다는, ‘보안’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첨단 무기 회수도 않고 현장서 폐기

실제 철군 마무리 작업 현장 상황도 긴박함의 연속이었다. 거액을 퍼부은 일부 첨단 무기들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대신, 폐기하고 떠날 정도였다. 카불 공항에 설치됐던 자동 방공요격체계(C-RAM)가 대표적이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런 장비들을 해체하는 건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절차여서 군사 용도로 다시는 쓸 수 없도록 불능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장병들을 보호하는 게 장비 회수보다 더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미군은 지뢰방호장갑차(MRAPS) 70대와 전술차량 험비 27대, 항공기 73대도 카불 공항에 ‘불능 상태’로 남겨 두기만 했다. AP통신은 “이런 사례들은 (미국이 느낀) 안전 위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프간 현지를 1분 1초라도 빨리 떠나는 게 시급했다는 의미다.

30일 케네스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이 화상 브리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 완료를 발표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30일 케네스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이 화상 브리핑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 완료를 발표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 국방부 수뇌부도 철수 작전을 초조함 속에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은 국방부 지하 작전본부에서 마지막 수송기의 이륙 과정을 90분간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바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며 “작전이 모두 완료되는 순간에야 (참석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했다.

쫓기듯 철수... "코끼리가 모기에 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진행된 미군의 이 같은 ‘대피 완료’는 지난달 15일 이후 아프간 상황이 ‘악몽의 연속’이었던 탓이 크다. 탈레반은 같은 달 6일 아프간 주도(州都)를 처음으로 점령한 뒤, 파죽지세처럼 주요 도시를 잇따라 점령했고 급기야 9일 후 수도 카불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당시 미 정보당국 내에선 ‘아프간 기존 정부가 최소 한 달은 버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완전한 오판이었다. 이후 카불공항은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고, 인파에 짓밟힌 사람이 숨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미국으로선 대혼란의 책임론에 휩싸이며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조롱의 대상까지 됐다.

최악의 사태는 지난달 26일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인 호라산(IS-K)의 카불공항 자살폭탄 테러 공격이었다. 미군 13명을 포함, 17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미국은 추가 테러 위협에 몸서리를 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있어선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철수 완료 예정 시한보다 24시간 먼저 부랴부랴, 초라함마저 느껴지는 뒷모습을 보이며 카불을 빠져나가야만 했던 이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 종식에 대해 “미국이라는 코끼리가 아프간(탈레반)이라는 모기에 졌다”는 촌평을 남겼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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