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독립' 축포 터트린 탈레반, 향후 정국 운영은… “정복보다 통치 더 어려울 것”

입력
2021.08.31 20:00
수정
2021.08.31 20:0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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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독립 선언, 아프간 통제 나서
정부 구성 막바지, 고위직은 탈레반 몫?
국제사회 인정, IS 갈등… 앞날은 안갯속
미군 떠나자마자 저항군 최후 거점 공격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탈레반 엘리트 특수부대인 '바드리 313' 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탈레반 엘리트 특수부대인 '바드리 313' 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59분(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완료 시한인 31일을 불과 1분 남겨둔 이때, 마지막 미군 병력 등을 태운 C-17 미 공군 수송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르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항 주변에 집결해 있던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대원들은 “역사를 만들었다”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자동차 경적과 휘파람, 축포 소리가 밤하늘에 크게 울려 퍼졌다.

탈레반이 31일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아프간 전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에 나섰다. 8월 15일 카불 입성과 함께 기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린 지 16일 만이다.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화려한 복귀다. 그러나 이들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도무지 해법이 안 보이는 경제난부터 또 다른 극단주의 테러 조직의 위협, 국제사회의 ‘정상국가 인정’까지, 곳곳이 가시밭길이다. 탈레반 정권 출범과 함께 아프간 내부 시계가 20년 전을 향해 거꾸로 돌아갈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도 여전하다.

알자지라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자비훌라 무히자드 탈레반 수석 대변인은 미국 철수 직후인 전날 밤 “미군이 카불 공항을 떠났고, 우리나라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고 선언했다. 몇 시간 뒤, 이튿날 아침에는 텅 빈 카불 공항 활주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뿐 아니라 세계와 좋은 외교 관계를 원한다”는 유화적 메시지도 내놨다. 그간 카불 공항이 ‘아프간 탈출’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점에 비춰, 탈레반이 ‘최후의 보루’도 점령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를 완료한 30일 밤 카불 공항 하늘에 '완전한 독립'을 축하하는 탈레반의 축포가 터지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를 완료한 30일 밤 카불 공항 하늘에 '완전한 독립'을 축하하는 탈레반의 축포가 터지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일단 탈레반은 무장조직에서 ‘국가 통치’ 기구로의 변신,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새 정부 구성안 작업이 막바지인 만큼, 조만간 그 얼개가 발표될 전망이다. 탈레반 스스로도 “아프간 모든 종족 지도자를 아우를 것”이라고 공언했던 터라, 타지크(인구의 27%) 우즈베크(9%) 등 소수 민족 출신 인사도 내각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을 통치할 ‘12인 위원회’에는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 아프간 국가화해최고위원회(HCNR) 의장 등 기존 정부 측 인물도 일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심 요직은 역시 탈레반이 꿰찰 공산이 크다. 전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탈레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최고 의사결정기구 ‘라바리 슈라(최고지도자위원회)’ 구성원들이 주로 내각 명단에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미 이들은 조직 내 고위급 인물들을 재무ㆍ내무장관, 카불시장 등 주요 자리에 앉혔다.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자비훌라 무자히드(오른쪽 세번째) 탈레반 수석 대변인과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31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자비훌라 무자히드(오른쪽 세번째) 탈레반 수석 대변인과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 통치 2기’의 막이 올랐지만, 향후 아프간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안에서는 미군 철수 후 고개를 드는 또 다른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위협이 부담이다. IS-K는 최근 미군 13명 등 17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사회 안정은커녕, 또다시 무법 상태의 혼돈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경제 상황은 최악이고, 장기집권의 토양인 인력마저 부실하다.

밖에서는 당장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정부’로 인정받는 게 최우선 과제다. 만연한 불신을 극복해야만 하는데, △여성 인권 존중 △현지 조력자 사면 등을 약속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탈레반 2.0’으로 이미지 쇄신에 나섰지만, 벌써부터 상반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세게 각국들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팽배해 있다. 실제 탈레반은 미군 철수 종료 당일인 이날, 반(反)탈레반 저항세력 최후 거점인 판지시르 계곡에서 군사 작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는 “탈레반이 급속히 아프간을 장악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정복보다 통치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각물_숫자로 본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각물_숫자로 본 아프가니스탄 전쟁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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