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탈레반의 아프간… 복잡해진 주변국 셈법

입력
2021.08.31 19:20
수정
2021.08.31 20:2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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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도는 테러 예방이 최우선 과제
다만 방법은 '자금 지원 vs 협력 중단' 갈려
인도, 앙숙인 파키스탄·라이벌 중국 의식
中, 신장위구르 反中조직 ETIM 전전긍긍

이란은 탈레반 축하... 종파 갈등 가능성도

탈레반 전사들이 차량을 타고 31일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 전사들이 차량을 타고 31일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미군 철수 종료와 함께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손에 넣으면서 주변국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테러 예방을 위해 중앙아시아의 안정 도모가 필요하다는 데엔 공감하지만, 이를 실현할 방법을 놓고 국제사회 원조나 경제 협력 중단 등 상반된 제안이 나오면서 수(手) 싸움이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자미르 카불로프 러시아 대통령 아프간 특사는 30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방송에 출연해 “아프간의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달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후에도 카불에서 자국 대사관을 철수하지 않은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아프간의 회생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탈레반에 원조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가 탈레반 지원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중앙아시아의 안보 불안정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카네기모스크바센터의 아프간 담당 연구원 키릴 크리보셰예프는 같은 날 “러시아의 레드라인은 중앙아시아의 안보 유지와 테러 예방”이라고 진단했다. WP도 대부분의 러시아 관료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사실상 실패한 것을 기뻐하면서도, 서방국과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는 아프간 상황을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 역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안보 위협 해결이 최우선 과제다. 특히 인도는 앙숙인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걱정이 더 크다. 2001년 10월 미국의 침공 이후 탈레반 잔존세력이 파키스탄으로 숨어든 전례가 있기에, 이번에는 인도를 위협하는 파키스탄 반(反)정부 무장단체들이 아프간에 은신하진 않을지 우려하는 것이다. 미국 NPR방송은 지난 27일 “아프간이 파키스탄 무장세력의 은신처가 되는 게 인도의 최대 공포”라고 진단했다. 니루파마 라오 전 인도 외무장관도 “국경이 테러 단체로부터 보호받고, 파키스탄이 아프간 상황을 악용하지 않는 게 인도 국익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원을 주장하는 러시아와는 달리, 기존 아프간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 구축에 '올인'해 온 인도는 '경제협력 중단' 카드를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인도는 아프간과 유럽을 연결하는 7,000㎞ 규모의 철도 건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등 아프간과 경제적 협력을 지속해 왔는데, 이런 사업들이 멈춰 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해피몬 제이콥 인도 자와할랄네루대 외교학 부교수는 “아프간에 대한 인도의 투자는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며 ”인도 입장에선 중앙아시아에 손을 뻗느니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인도 입장에서도 단박에 아프간을 끊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인도가 떠나면 라이벌인 중국이 영향력을 강화하게 된다. 탈레반 대외 협상 책임자가 29일 “인도와 정치적·경제적 협력을 유지하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 등 아프간 경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인도가 사라지면 아프간의 대안은 사실상 중국뿐이다. 실제로 중국은 아프간이 일대일로의 요충 지점에 위치한 데다, 희토류 등 자원도 풍부해 탈레반에 유화적인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중국은 신장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이 아프간의 지원을 받아 신장 지역에서 테러 활동에 나설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위구르족과 아프간 탈레반은 같은 이슬람 수니파로 엮여 있다. 위구르 극단주의 진영이 탈레반을 뒷배 삼아 분리주의 운동을 본격화하면 중국으로선 최악의 경우다. 미국이 ETIM을 테러 조직으로 재지정해 주길 내심 바란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중동 지역 맹주인 이란은 일단 미군 철수를 환영하며 탈레반 정부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은 시아파인 반면, 탈레반은 수니파 근본주의 조직인 만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유명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는 “수니파인 탈레반이 게릴라 조직을 넘어 이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다, 아프간에 다른 수니파 조직인 IS 분파도 활동해 이란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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