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습시 민간인 사망' 조사한다지만… "심장을 잃었다" 딸 잃은 절규

입력
2021.08.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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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2차 보복 공습 당시 민간인 10명 사망
철군 후 '초지평선' 대테러 전략 비판 불거져
미 국방부 조사 진행… "아프간인들 좌절"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자살폭탄 테러 공격 시도자를 겨냥한 공습을 하면서 인근 민간인까지 숨진 이튿날인 30일 사고 현장에 주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모였다. 카불=AFP 연합뉴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자살폭탄 테러 공격 시도자를 겨냥한 공습을 하면서 인근 민간인까지 숨진 이튿날인 30일 사고 현장에 주민들과 피해자 가족들이 모였다. 카불=AFP 연합뉴스

"딸을 잃었다. 내 심장을 잃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대한 2차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시도하려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을 겨냥한 미군의 공습으로 두 살배기 딸을 아프간 여성은 이같이 말하며 울부짖었다. 미국 정부는 의도하지 않은 민간인 사망에 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가족을 잃은 아프간인들의 고통을 보상할 수는 없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시행되는 미군의 공습 위주 대(對)테러 전략이 변치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등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전날 공습 과정에서 아프간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 "평가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중부사령부도 성명을 내고 "무인기(드론) 공격에 이어 강력한 후속 폭발이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민간인 사상자 신고 상황을 인정한 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의 구체적 내용을 모두 공개하진 않았다. 오히려 "지구상의 어떤 군대도 민간인 사상 방지 측면에선 미군보다 더 노력하지 않는다"(커비 대변인)며 방어적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26일 자국군 13명을 포함해 170여 명의 사망자를 낳은 카불 공항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 이튿날 보복 공습을 단행해 IS의 아프간 지부인 '호라산'(IS-K)의 고위급 2명을 제거했다. 그리고 전날(29일) 공항 추가 테러 공격을 시도하려던 IS-K 대원들이 탑승한 차량을 폭파시켰다. 사실상 IS-K에 대한 2차 보복 공습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민간인 거주구역에 있던 공격 대상 차량 내 폭탄이 함께 터져 대규모 폭발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인근의 다른 차량에서 하차하던 일가족 10명이 숨졌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하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사망자 중 8명은 18세 이하 미성년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미군의 이런 공격 방식은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비극적"이라며 "(이전에도) 미군이 사건 조사를 약속했으나 아프간인들을 좌절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유사 사건들이 아프간 시민들에게 종전 아프간 정부와 미국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심어 주고 말았다는 의미다.

이번 논란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 후 대테러 전략인 '초지평선(over the horizon)' 작전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초지평선 작전'은 고도의 감시망을 통해 아프간이 아닌 외부의 군 기지에서도 무인기를 출동시켜 테러 조직원만을 겨냥한 핀셋 타격을 수행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지상 정보의 철저한 수집 없이 진행되는 이런 공습이 과연 '민간인 피해 제로(0)'를 언제나 담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폴 오브라이언 국재앰네스티 미국지부 이사장은 성명을 통해 "민간인 보호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초지평선 전략을 앞으로도 계속 추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이번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 줬다"고 규탄했다.

이에 더해, 미군 공습의 불씨가 된 카불 공항 테러와 관련해 "미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상당한 정보를 갖고서도 대처하지 못했다"는 폭로도 나와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국방부 고위인사의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26일) 공항 테러 24시간 전 국방부는 호라산의 공격 정보를 인지하고 테러 지점인 '애비 게이트' 등 카불 공항 게이트 두 곳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지시했으나, 작전 수행에 실패했다"고 전했다. 영국 피난민들의 공항 진입 등을 이유로 현장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대규모 사상자를 낳고 말았다는 얘기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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