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경찰 현장 확인 소홀… '전자발찌 훼손 연쇄살인' 못 막았다

입력
2021.08.30 19: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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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살인 직후 야간외출제한 위반했지만
피의자 해명·위치정보에 기대, 출동 중도 철회
도주 뒤 추적 나선 경찰, 5번 피의자 집 방문
수색 안 해 시신 발견 못 하고 추가 범행 방치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내 법무부 의정관에서 전자감독대상자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내 법무부 의정관에서 전자감독대상자 전자장치 훼손 사건 경과 및 향후 재범 억제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전과자 강모(56)씨가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잇따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법무부와 경찰이 강씨의 범행을 조기에 인지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법무부와 경찰은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절차에 얽매인 소극적 자세로 강력범죄 차단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30일 경찰과 법무부에 따르면 강씨는 성폭력 2건을 포함해 전과 14범으로, 교정시설에 수용된 기간이 27년(실형 23년, 보호감호 4년)에 달한다. 최근 범행은 2005년 9월 차량 안에서 28세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갈취하고 추행한 사건(특수강제추행)으로, 그는 징역 15년을 복역하고 보호감호를 받다가 올해 5월 6일 가출소했다. 조건은 전자발찌 5년 부착과 야간 외출(오후 11시~오전 4시) 제한이었고, 같은 달 14일부터 서울동부보호관찰소의 감시를 받았다.

소극적 대처에 연쇄 살인 못 막아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모씨의 송파구 거주지. 연합뉴스

전자발찌를 끊고 살인 행각을 벌인 강모씨의 송파구 거주지. 연합뉴스

출소 후 3개월여 동안 한 차례 야간 외출 제한을 어긴 것 외엔 조용히 지내던 강씨가 이상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 건 27일 밤이었다. 그날 0시 14분쯤 집 밖을 나섰다가 20분 뒤 귀가한 것이다. 보호관찰소 범죄예방팀은 강씨의 규정 위반 경보를 받고 출동했다가, 현장 도착 전 그가 귀가하자 "추후 소환해 위반 사실을 조사하겠다"고 고지하고 도로 철수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동하면서 강씨에게 전화했더니 '비상약을 사러 나왔다'고 해명했고, 위치정보상으로도 집에 돌아온 걸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씨는 자수한 뒤 첫 피해자인 40대 여성 A씨를 자기 집에서 살해했으며 범행 시간은 26일 오후 9시 30분~10시라고 진술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살인을 저지른 직후 규정을 어기고 집 밖을 나서면서 이상 징후를 보인 셈이다.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현장 확인이 아쉬운 대목이다. 강씨는 결국 27일 오후 5시 31분쯤 전자발찌를 끊고 법무부의 감시 범위를 벗어나고 말았다.

강씨가 도주한 뒤 추적에 나선 경찰도 소극적이긴 마찬가지였다. 27일 오후 8시 26분쯤 법무부로부터 공조수사를 요청받은 경찰은 이튿날까지 강씨의 집을 총 5차례 찾아갔다. 하지만 수색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내부 수색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집안에 있던 A씨의 시신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법무부와 경찰은 뒤늦게 강씨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 사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겼다. 렌터카와 버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추적을 따돌린 강씨는 50대 여성 B씨를 만나 B씨의 차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이동하다가 29일 오전 3시쯤 서울 송파구의 주차장에서 B씨를 살해했다. 강씨는 5시간가량 지난 그날 오전 8시쯤 시신이 실린 차를 운전해 경찰서에 자수했다.

사과한 법무부와 경찰… 책임 공방도

전자발찌. 게티이미지뱅크

전자발찌. 게티이미지뱅크

법무부와 경찰은 대처가 미흡했다고 시인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30일 "서울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도 이날 "피해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재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강씨에 대해 살인, 전자장치부착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두 기관이 강씨의 성범죄 전력을 공유하고 선제적 대응에 나섰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자, 양측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경찰이 공조 요청을 받을 때 강씨가 보호관찰 대상이고 전자발찌를 훼손했다는 사실만 고지받아 그가 재범 우려가 높은 인물이라는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강씨가 자수한 뒤에야 그가 전과 14범이란 사실을 파악한 걸로 알려졌다. 법무부가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에 강씨의 범죄 경력을 알렸다"고 밝히자, 경찰 관계자는 "범죄 경력이 아니라 보호관찰 대상이란 사실만 알려줬을 뿐"이라며 재차 반박하기도 했다.

강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난 지 16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법무부가 체포영장을 신청한 것을 두고도 늑장 대응이란 지적이 나오자, 경찰은 "법무부가 수사 주무 부서인데 경찰이 먼저 영장을 신청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서 선을 긋는 모습도 보였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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