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냉전 전선의 첫 균열

입력
2021.08.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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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그단스크 협정

1980년 8월 폴란드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정문에 모인 자유노조 노동자들. polishhistory.pl

1980년 8월 폴란드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정문에 모인 자유노조 노동자들. polishhistory.pl

1980년 폴란드 자유노조 총파업 승리는 노동운동의 승리이기에 앞서 소비에트 냉전 시스템의 결정적 균열이었다. 폴란드 정부의 항복은 노동자 생존권을 넘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권위주의 독재권력의 항복이었다. 브레즈네프 체제의 소비에트는 그 직후 국방장관이던 야루젤스키를 총리로 임명해 노·정 합의를 전부 백지화하고 노조를 강경 진압하면서 사태를 원점으로 되돌리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폴란드는 1989년 8월 동유럽 소비에트 블록 해체의 첫 단추가 됐다. 폴란드 공산정권의 사실상의 항복 문서인 '그단스크 협정(Gda?sk Agreement)'이 1980년 8월 31일 체결됐다.

폴란드 소비에트 괴뢰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1970년대 잇따른 오일쇼크로 인한 생필품 가격 급등과 국제적 불황에 한계상황에 처했다. 그 와중에 그단스크 조선소 한 감독관이 노동자들의 보너스를 착복해 도박으로 탕진한 일이 터졌다. 그 감독관은 노조의 비호를 받던 당원이었고, 당은 그를 비호했다.

어용노조가 아닌 새로운 노조가 결성됐다. 이른바 자유노조였다. 노조 지도부는 최저임금 보장과 휴일 근무 및 노동 감시 폐지, 근로자 경영 참여 등 21개항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감행했다. 그 선봉에 만 37세 해고노동자 레흐 바웬사가 섰다. 파업이 철강과 광산업 등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백기를 들었고, 그 결과가 '그단스크 협정'이었다. 승리 직후 바웬사는 자유노조 연합 즉 '솔리대리티(Solidarity)'를 결성했다.

자유의 바람을 잠재우라는 특명을 받고 투입된 신임 총리 야루젤스키의 선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소비에트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설과 임박한 붉은 군대의 진입과 살육극을 모면해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 소비에트 권력에 동조했다는 설이다. 어쨌건 그는 1989년 6월 솔리대리티 측과 합의해 동구권 최초로 민주주의 총선을 치렀고, 7월 의회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고, 이듬해에 하야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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