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재정의 정치화’라는 말이 자주 나돈다. 재정정책이 정권의 이해에 따라 그릇된 방향으로 이탈하는 현상을 비판하는 용어다. 흔히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고 한다. 그러니 핵심 사회적 가치 중 하나인 국가재정을 어떻게 운용할지를 결정하는 건 정치의 본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재정의 정치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국가 번영을 위해 최선을 찾아야 할 재정정책이 정파적 이해에 휘둘리는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 재정운용에 작용하는 삿된 정파적 이해의 대표적인 경우가 선거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재정정책일 것이다. 1970년대엔 ‘고무신 선거’니 ‘막걸리 선거’니 하는 말이 있었다. 선거에 나선 입후보자가 득표를 위해 제 돈 써서 유권자들에게 고무신을 돌리고, 막걸리를 대접하며 매표에 나섰던 포퓰리즘 행태를 꼬집는 말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아무리 고무신이지만 함부로 돈 뿌리다가 낙선하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었다.
▦ 소박했던 고무신 선거보다 한 단계 발전된 재정 포퓰리즘이 예산을 동원한 지역개발 선거다. 1980년대까지는 국회의원이 지역개발 예산 끌어다가 다리 놓아주고 도로 깔아주는 식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정부 예산이 커지고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공항이나 철도, 대학과 산업단지, 나아가 거점도시에 이르는 매머드급 개발사업도 선거용으로 가공됐다. 그 결과 적잖은 선거용 지방공항들이 만성적자의 늪에 빠졌고, 일부 지자체 경전철이 고철 흉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 현 정부 선거에서는 현금성 복지정책에서 포퓰리즘 시비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21대 총선과 지난 4월 재보선을 전후한 1조 원대 아동수당과 노인 일자리 임금 선지급,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디지털화폐 지급 공약 등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난주 말 당정이 예산안 협의 후 발표한 일련의 ‘청년특별대책’을 두고서도 재정의 정치화 논란이 만만찮다. 육군병장 월급 67만 원선 인상, 청년 월세지원금 20만 원 지급, 국가장학금 확대 등 당장의 현금지원이 일자리와 주거사다리를 빼앗긴 청년세대를 겨냥한 선거용 당의정 아니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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