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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장군이 없는 군대

입력
2021.08.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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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국방부 장관(왼쪽)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있다. 이한호 기자

서욱 국방부 장관(왼쪽)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있다. 이한호 기자

직업군인은 크게 부사관, 장교, 장군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부사관 직군에선 일본군 하사관을 모범 사례로 꼽는다. 종전 후에도 괌 밀림에 은신했다 27년 만에 발견된 하사관 사례가 널리 인용된다. 군국주의 그림자가 배어있긴 하지만 그는 상관의 명령을 목숨 걸고 이행했다. 장교는 프로이센군 시절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춘 독일군 장교가 전범으로 꼽힌다.

장군은 미군 장성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 높은 도덕성과 책임을 지는 자세 때문이다. 3년 전 별세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다. 매케인은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다 베트남 전쟁 때 5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매케인이 미국 태평양사령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북베트남군은 협상용 카드로 쓰기 위해 석방 기회를 줬지만, 그의 아버지 매케인 제독은 먼저 잡힌 동료를 풀어주라면서 거절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것이다.

군복에 달았던 약장(略章) 하나가 가짜라는 비난을 받자 집무실에서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 장군도 있다. 여군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선 제레미 마이클 보더 전 해군참모총장이다. 그도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나 직접적인 전투 행위에 참여한 군인에게만 허락되는 ‘V’ 마크를 패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처럼 장군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고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덕목을 지키는 자리다.

한국 장군의 명예와 책임감은 앞서 든 사례와 비교하기 창피한 수준이다. 얼마 전 여당 국방전문위원에게 지휘헬기를 제공했다가 구설에 오른 특전사령관이 근신 7일의 징계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차피 가는 길에 태워준 게 뭐가 문제냐는 안이한 시각도 문제지만, 추가된 항공유 가격을 따져 7,000원 상당의 교통편의 제공을 징계 사유로 삼은 건 실소를 자아낸다. 고위 장성이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작전에 동원되는 군대 자산을 갖다 바쳤다는 문제 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만 해도 군에선 부실급식,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 여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 등 기강 문제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군대의 기본인 경계 실패는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부사관과 장교들에게만 불똥이 튀었을 뿐 책임지겠다고 나선 장군은 본 적이 없다. 성추행 사망 관련 지휘라인 책임도 살피라는 대통령의 불호령에 공군참모총장이 떠밀리듯 사의를 표한 게 전부다. 반면 사건사고나 구설수에 올라 징계를 받거나 보직에서 물러났다가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들자 슬그머니 복귀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북한이탈주민 월북 사건ㆍ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 당시 경계 소홀 지휘관, 공관 병사 갑질 지휘관, 코로나 음주 지침 위반 지휘관 등이 육군본부나 주요 부대의 핵심 보직에 입성한 상태다.

청와대 반응을 보니 취임 1년 만에 7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한 국방부 장관 거취는 유임 쪽으로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다. 또다시 성추행 사망 사건이 발생한 해군의 참모총장도 내년 4월까지 2년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정권 말 인사청문회 리스크를 피하고 싶다는 정무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각군을 지휘하는 장관이 대통령 인사권 뒤에 숨는 사이, ‘왜 나만 책임지냐’는 보신주의가 장군 사회에 빠르게 스며드는 중이다. 미래권력과 현재권력이 공존하게 돼 인사권 행사가 불투명한 내년 4월 정기 장성인사만 넘기고 보자는 기회주의도 만연해 있다고 한다.

책임지지 않는 지휘관이 이끄는 군대가 목숨을 걸고 싸울 리는 없다. 불명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줄만 잘 서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장군이 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게 돼 있다.

김영화 뉴스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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