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사위 함부로 대하는 친정엄마와 연 끊었는데...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저는 남편, 세 살 된 딸과 함께 사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제 남편, 사위를 함부로 대하는 친정엄마와 갈등을 빚다 2년째 왕래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락을 끊고 사는 게 속 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될지 마음이 복잡합니다.
결혼 전에는 엄마와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만나고, 엄마가 이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불편해졌어요. 주말에 남자친구를 만난다 하면 대번에 "그럼 엄마는?" 이렇게 되물었고, 저는 그때마다 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자"라고 엄마를 많이 달랬습니다.
결혼 준비를 할 때도 중요한 일정에는 엄마가 꼭 동행했어요. 남편도 저희 엄마가 헛헛해하시는 것 같다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에 대한 험담이었어요. 외모, 직업에 대한 비난도 서슴없이 하셨어요. 남편이 뚱뚱한 편인데 신경질적으로 "뚱뚱하면 혈압 생겨!" "저거 봐! 맞는 바지가 없다"거나 남편이 저와 동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공무원은 돼야지,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그래!"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결혼, 임신 소식에도 부정적이었어요. 결혼한다고 했을 때의 반응은 "발목 잡혔다. 이제는 여행이든 어디든 못 간다"라고 했고, 임신했을 때 첫 반응은 "이제 아이까지 생기면 더 못 다니겠네"였습니다.
결혼 후 제가 친정집에 잠시 머물 때는 사위를 함부로 대하는 게 더 심해졌어요. 임신 막달 때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상황이 아니어서 신혼집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가서 지냈습니다. 남편은 신혼집에서 지내다 금요일마다 처가에 왔는데, 남편이 오는 날만 되면 친정엄마는 제게 "밥 없으니 알아서 먹고 오라고 해"라고 쏘아붙이셨어요. 저는 일주일 만에 보는 남편이니 주말만큼은 함께 지내고 싶은데도 엄마는 "방이 없다"며 남편을 돌려보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전화로 "점심 뭐 먹었어?"라고 안부를 물었는데, 엄마가 이를 듣더니 오해하고 역정을 내는 겁니다. "그런 거 왜 물어! 장모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라면서요.
절연까지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렇습니다. 어버이날에 친정 오빠네와 저희 가족, 부모님이 함께 식사를 하기로 되었는데 친정 오빠네 사정으로 약속이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그 불똥이 남편에게 튀었어요. 친정엄마는 사위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따지듯이 물었고 "당장 오라"며 화를 냈습니다. 이 일로 저는 엄마와 연을 끊었고, 그게 지금 2년이 다 돼 갑니다.
저는 아직도 친정엄마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넘어, 증오심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적극적 중재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다가도 장례식장에 갈 일이 생기면 문득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그때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윤아영(가명·33·전문직)
아영씨, 결혼하고 출산을 하고 새 가정을 잘 꾸려나가야 하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엄마와 절연하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요. 언제든 내 편이어야 할 부모가 나를 지지하지 않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영씨는 왜 엄마와 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을까, 아영씨 엄마는 왜 사위에게 그랬을까, 그 감정을 붙잡고 들어가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아영씨는 특별한 이유 없이 사위 험담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부모가 내 배우자에 대해 심한 험담을 하는 게 용납될 때는 외도, 가정폭력 등 나에게 혹은 아이에게 명백히 잘못했을 때입니다. 또는 사위가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서 타박하는 정도가 될 거예요. 부모가 자식의 편이 되어서 보호해주고 힘이 되어준다는 의미에서요. 하지만 아영씨 엄마는 이유 없이 내 배우자를 나쁘게 대합니다. 아영씨가 남편한테 '우리 엄마 원래 말투가 좀 저래' 이렇게 넘어갈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아영씨는 엄마가 남편을 공격할 때마다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부모는 자식과 감정적으로 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나를 아끼고 존중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나에게 잘해주는 내 남편에게도 그렇게 대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아영씨는 표면적으로 '내 남편한테 왜 그래요'라고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가 '남편'이 아닌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느꼈을 거예요.
특히 자식들은 힘들 때 부모가 자기를 품어주기를 바라요. 그런데 엄마는 즐거울 때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기쁨과 행복을 나누었지만 아영씨가 몸이 무거워서 힘들 때, 궁지에 몰렸을 때 품어주지 않았어요. 그때 아영씨를 우선으로 두지 않고 엄마 본인의 감정을 우선으로 뒀죠. 아영씨 엄마는 '내가 그때 삼시세끼 다 해먹이고 뒷바라지 해줬는데'라고 하겠지만 당시 아영씨가 가장 원했던 건 남편이 옆에 있어 주는 거였죠.
결혼,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의 엄마 반응도 예상 밖이었을 거예요. 아영씨와는 다르게 엄마는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고, 뛸듯이 기뻤던 아영씨 감정의 강도와는 다르게 엄마는 미지근한 강도로,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헷갈리는 감정을 표현했죠.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아영씨는 엄마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아영씨 엄마는 딸을 독점하고 싶어합니다. 아이들이 사춘기일 때 친구 관계에서 친구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해요. 아영씨와 엄마는 부모 자식간이고, 아영씨와 남편은 배우자로 전혀 다른 관계인데 말예요. 부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사랑은 다른 이성과는 나눌 수 없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이지요. 다른 이성과 나눈다면 외도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아영씨 엄마는 딸과의 관계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이기를 원하는 거예요.
아영씨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게 가능했지만 이후부터는 이런 끈끈한 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엄마 입장에서 사위는 자신과 딸 인생에 끼어든 불청객인 거죠. 그래서 비이성적으로, 이유라고 할 수 없는 것들로 트집을 잡았습니다. 아영씨 엄마가 딸을 무척 사랑하긴 하지만 이는 엄마의 위치에서 하는 사랑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엄마가 이러는 건 아영씨가 엄마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엄마에게 아영씨는 가장 가깝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같이했고, 마음이 힘들 때는 털어놓고, 외로울 때 옆에 있어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즉 엄마로서 '엄마답게' 딸을 대했다기보다는 본인 마음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역할은 배우자가 하는데, 아영씨 집안에서는 아영씨가 대신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아영씨가 결혼을 하고 곁을 떠납니다. 엄마 마음 깊은 곳에는 딸이 자기를 버리고 갔다는 배신감이 있었을 거예요. 딸이 밉습니다. 그런데 또 동시에 너무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라 아영씨에게 직접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딸에 대한 이 감정, 배신감에서 오는 분노, 화, 적개심 이런 것을 사위한테 투사하는 거죠. 사위에 대한 공격으로 보이지만 실은 딸에 대한 공격을 하고 있는 게 맞습니다.
어버이날 가족 모임이 취소됐을 때도 엄마가 진짜 섭섭했던 건 아영씨의 반응이었을 거예요. 약속이 취소됐을 때, 아영씨가 '엄마, 오빠 너무하는 거 있지. 엄마 아빠가 우선이지 어떻게 자기 일이 우선이야'라며 호들갑 떨어주기를 바랐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니 서운했던 겁니다. 그런데 딸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사위한테 그 화살이 돌아갔죠. 아영씨 엄마는 아영씨가 자신을 강렬한 감정으로 특별하게 대해주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영씨가 출산을 앞두고 친정집으로 들어왔을 때 엄마는 어땠을까요. 뺏긴 딸을 다시 뺏어 온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요. 엄마는 뺏어 온 딸 옆에 다시 사위를 두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밥도 안 주고, 재워 주지도 않고, 딸 곁에 두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는 사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새 식구를 가족으로 받아들여 확장된 관계와 확장된 사랑의 형태로 나아가야 하는데, 여전히 딸과 예전의 관계로 머무르고 싶어 합니다. 반대로 며느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을 보면 며느리는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아영씨는 이런 엄마를 보며 은연중에 더 섭섭했을 거예요.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아영씨 엄마 내면의 문제입니다. 매우 감정적인 문제라 아영씨가 이를 엄마한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엄마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이렇게 연락을 끊고 지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남편 분이 굉장히 이해심이 많은 분이긴 하지만 반복되면 상처가 클 거예요.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한테도 외할머니가 아빠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아영씨도 의절하고 사는 게 마냥 편하고 좋지만은 않아 보여요. 만약 불편하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엄마에게 단단히 약속을 받고 조금씩 왕래를 시작해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엄마, 아빠, 오빠를 모아 놓고 그 앞에서 이야기하세요.
사위가 엄마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고, 가정을 잘 일궈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겁니다. 엄마는 딸로서 사랑하는 것이고, 남편은 배우자로서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세요. 그래야 엄마가 딸을 뺏겼다는 마음이 덜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는 엄마에게, 사위한테 연락하지 말고 딸한테 직접 하라고 얘기하세요. 남편한테도 장모님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하고요. 약속을 받으면 설, 추석, 생신 때 그 선에서 잠깐 얼굴 보는 정도로 시작해 보는 거죠. 남편에게도 이 칼럼을 보여주고 양해를 구하고요. 그래도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때는 다시 지금처럼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겠죠. 엄마와 잘 지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영씨 마음에 혹여 절연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게 있다면 너무 고통스럽지 않은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엄마와 자식 사이가 틀어지면 보통 엄마가 먼저 사과를 합니다. 그런데 아영씨 엄마는 마치 친구끼리 싸우고 나면 서로 먼저 연락하지 않고 신경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요. 아영씨 엄마는 엄마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엄마 딸이지, 엄마 친구나 배우자가 아니라는 것을 못 박으세요. 엄마는 엄마의 위치로 돌아가고, 딸은 딸의 위치로 내려가야 합니다.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내면의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상담을 신청해 보세요. 상담신청서를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에 소개됩니다. ▶상담신청서 내려받기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