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하셨을까요?”

입력
2021.08.28 04:3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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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어를 두고 ‘배우기 어려운 4대 언어’라 했다. 영어와 문법이 많이 다를뿐더러 문화적으로 낯선 언어란 것이다. 특히 한국어 높임말이 그러하다. 한국말에는 주체는 존중하면서도 자신을 낮추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 ‘경우의 수’가 장소나 상황, 친소 관계에 따라 다르니 학습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칭찬에 ‘감사합니다’며 수용하는 서양과 달리, 한국에서는 “뭘요. 제가 좀 더 노력해야죠”와 같이 말한다.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 벼 이삭처럼 겸손하게 말한 것이지만, 서양인에게는 호의를 거부하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19세기 아시아에 처음 온 서양인들도 겸손과 겸양이 담긴 아시아의 표현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아들을 ‘멍청하다’고 소개하고,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별거 아닌 것’이라 하며, 한 상 가득 차린 음식을 두고 ‘차린 것 없다’고 하니 말이다.

높임말이 외국인에게만 어려우랴? 한국인도 ‘아까 내가 실수한 거 없냐’며 되돌아볼 정도로 높임법은 두렵다. 존중 표현은 범문화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중요시되었다.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연장자의 경험을 존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언어문화다. 높임법은 삶의 터전을 유지하는 보호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압박감에서 나오는 과도한 높임법은 불편하다. 아무것이나 높이는 것은 높임말이 아니다. “찾으시는 옷은 지금 사이즈가 없으세요”라든지,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는 물건을 사람처럼 높인 예시다. “제가 몸소 체험했습니다”나 “성함이 홍자 길자 동자 맞으세요?”는 모르고 쓴 예다. 존경의 어휘인 ‘몸소’는 본인에게 쓸 수 없고, ‘자’는 성에는 붙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손님, 예약하셨을까요?’와 같은 표현이 많이 들린다. 공손하게 보이기 위해 단정적인 표현을 삼가려는 것이겠지만, 실은 사람을 앞에 세워 두고서 질문도 추측도 아닌 혼잣말을 하는 상황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최근 온라인 외국어 학습 사이트에서 한국어가 영어권 화자가 배우려는 언어 중 5위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학습자 700만 명에게 높임법은 여전히 생소하겠지만, 이 또한 언어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이려 한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높임말을 문화적 의미보다 문법의 압박으로 여기지 않는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말 주체가 생각하고 쓴다면 말 문화도 바로 설 것이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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