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테러로 아비규환 카불…추가 공격 우려도

입력
2021.08.27 17:33
수정
2021.08.28 11:2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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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 공항 인근 두 차례 폭발, 최소 100명 숨져
테러 배후 IS 추정, 미군 "추가 테러 대비할 것"
국제사회 "야만적 공격"…대피 작전 계획대로

26일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인근 거리에 부상자들이 구호를 기다리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26일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인근 거리에 부상자들이 구호를 기다리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사람들은 산 채로 불타고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외곽에서 26일(현지시간) 벌어진 폭탄 테러 생존자들은 사건의 참상을 다급하게 전했다. 한 남성은 로이터통신에 "폭발 순간에 내 고막이 터져나가고 청력을 잃은 줄 알았다"며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린 것처럼 시체와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고 설명했다. 100명이 넘게 사망한 이번 테러로 국제사회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고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던 탈레반도 악재에 직면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오후 카불 공항 애비 게이트와 이로부터 250m가량 떨어진 배런 호텔에서 잇따라 발생한 폭발로 아프간인과 미군이 각각 최소 90명, 13명 사망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프간에서 미군 장병들이 하루에 이만큼 많이 목숨을 잃은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미군 부상자 수만 해도 18명이 된다. 공항 인근에서 검문·보안을 담당했던 탈레반 역시 이번 테러 사망자 가운데 최소 28명의 탈레반 대원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전체 부상자 수도 100명이 훌쩍 넘어 사망자 수는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열악한 카불의 의료시설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구급차가 모자라 손수레로 부상자를 실어 나를 정도다. 온라인에 퍼진 사건 영상을 보면 하수가 흐르는 공항 배수로가 거대한 무덤이 돼 버렸고 피를 흘리며 구조를 기다리는 부상자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한 병원 직원은 "(테러 현장에서) 병원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 멍하게 완전히 넋을 잃은 상태였다"며 "그런 상황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26일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26일 테러가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이번 자살폭탄 테러의 배후로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호라산'(IS-K)이 지목됐다. IS 스스로도 선전매체 아마크통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이번 테러의 배후가 자신들이라고 선언했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점령 이후 대피 인파가 공항에 몰리면서 테러 가능성은 여러 차례 경고됐다. 이번 테러 발생지 두 곳 모두 그중에서도 밀집도가 높은 장소들이다. 첫 번째 폭탄이 터진 애비 게이트는 접근이 어려운 공항 정문을 대신해 대피자들이 줄을 서던 곳으로 한국 정부의 일명 '미라클' 대피 작전 수행 시에도 이용했던 통로다. 배런 호텔은 영국군 등의 피란민 집결소였다.

당장의 더 큰 문제는 추가 테러 가능성이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대피 작전을 겨냥한 더 많은 테러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밝혔으나 철수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 미 정부는 자국 군인들을 계획대로 오는 31일까지 완전 철수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탈레반은 "외국군 철수 시한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모든 아프간 공항 주변에 감시탑을 설치하는 등 경비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이번 테러를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이번 공격을 "모든 종교 원칙과 도덕적·인간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테러로 아프간 사람들을 돕겠다는 결의가 더 굳어졌다"며 오는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회의 소집 계획을 밝혔다. 미국과 함께 대피 작전을 진행 중인 서방 국가들은 끝까지 안전한 임무 완수를 거듭 약속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성명으로 이번 테러를 "야만적 공격"이라며 "대피 노력을 마지막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동일한 방침을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피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지상에 있는 이들의 영웅적 행위"에 경의를 표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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