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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단물까지 몽땅... '참새 리스크'에 힘겨운 황금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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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이른 새벽. 제법 누런빛을 띤 강원 철원군 동송읍 들녘에서 농부가 기다란 막대기를 휘두르며 고함을 친다. 멀리서 보기에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 속에서, 농부는 1년 농사를 지키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 중이다. ‘한 톨의 알곡’이라도 지키려는 농민과 먹으려는 참새떼가 추수를 앞둔 들판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황금들녘으로 가는 길목 8월은 이른바 '참새 리스크'가 지배하는 시기다. 참새떼로 인한 곡물 손실이 집중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철원농업기술센터 이희종 계장은 “환경 변화로 참새 개체수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벼가 머리를 숙이는 유수기에 집중적으로 날아와 단물을 빨아먹기 때문에 피해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참새는 벌레보다 곡물류를 주로 먹는다. 그중에서도 벼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데, 딱딱한 알곡보다 달달한 우윳빛 수액이 가득 찬 이맘때의 나락을 가장 좋아한다. 벼가 완전히 익어버리면 한 톨씩 쪼아 먹어야 하는데 반해, 수액을 머금은 나락은 한꺼번에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새는 나름 정해진 방식에 따라 논을 공략한다. 넓은 들판보다 집 주변 논으로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논의 가장자리, 즉 논둑을 따라 여물기 시작한 벼를 집중적으로 먹어 치운다. 철원군에서 벼농사만 40년째 짓고 있는 농부 임인섭(61)씨는 “3만5,000평 논에서 나오는 수익 1억5,000만 원 중 참새 때문에 입는 피해가 10%는 족히 된다”고 말했다. 임씨는 “참새떼 피해를 막으려면 군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도 덧붙였다. 철원군은 참새떼로 인한 피해 조사와 보상을 준비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보상액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참새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과거에 비해 더 약고 눈치가 빨라진 참새떼 앞에서 허수아비는 이미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바람개비부터 새망, 매 모양의 모빌, 조류 퇴치기까지 다양한 퇴치 수단들을 동원해 봐도 참새떼는 이를 비웃듯 들녘을 농락하고, 농민들의 속을 태운다.
참새 개체수가 늘고 있는 점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때 농촌 주택개량사업과 농약 때문에 크게 줄었던 참새는 친환경 농법이 등장하고 매와 같은 천적이 사라지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참새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참새는 벼가 익는 8~9월 이외에는 주로 해충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에 오히려 병충해 예방에 도움이 되고, 농약을 적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낱알 한 톨이 소중한 만큼 환경과 생명의 중요성도 무시할 순 없다. 농부와 참새가 공존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황금빛 들녘과 허수아비, 그 위를 평화롭게 나는 참새떼를 바라보며 풍년을 실감하던 시절이 다시 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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