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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통제는 법 아닌 윤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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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최근 일어난 국내외 사건에 대해서 비평하는 칼럼을 쓴다면 비전문가의 알량한 지식을 주절대는 수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은 언론매체를 통해 접했거나 혹은 누군가가 떠드는 것을 듣고 알게 된 정보에 근거했을 뿐 진실의 문이 나한테만 열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언론(言論)'이란 크게 두 가지를 일컫는데 '개인이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인터넷 등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개인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본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펼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고, 두 번째의 경우에는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진실 따위는 상관없이 대중을 선동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논쟁으로 시끄럽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법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법은 2005년 처음 제정되었는데 입법의 목적은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 또는 그 매개(媒介)로 인하여 침해되는 명예 또는 권리나 그 밖의 법익(法益)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 이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구제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언론의 자유와 공적(公的) 책임을 조화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법익 간의 형량인 '언론의 자유'와 '공적 책임'은 늘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우디 해럴슨 주연의 영화 '래리 플린트'는 포르노 잡지인 '허슬러'의 창업주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종교인과 정치인을 모독하고 조롱했지만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공인의 정신적 피해보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더 크다'는 수정헌법 1조를 더욱 굳게 확립하게 되었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하였다.
법사위까지 통과한 개정안은 국내 언론단체는 물론 대한변협 심지어 국제언론인협회까지 반대하고 나섰다고 한다. 개정안의 여러 독소 조항 중에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내용은 이른바 '가짜뉴스'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된 것이다. 더구나 법적 소송으로 진행될 경우 잘못된 보도가 고의 혹은 중과실로 추정된다면 공익성을 위한 것이라도 '입증책임의 전환'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인한 억울한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입법 의도는 충분한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무과실책임주의로 인한 언론인들의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료행위 역시 신이 아닌 이상 과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유사한 사례일 수 있다. 만약 고의가 아닌 중과실에 대한 법적 정의를 포괄적으로 규정한다면 고발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 의료행위를 수행할 확률은 매우 낮아질 것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진실에 대하여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뉴스 앵커인 월터 크롱카이트는 '언론의 자유는 단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라고 했다. 윤리가 해야 할 일을 법이 먼저 나서는 사회는 아무리 잘 살게 되더라도 민주국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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