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여성 첫 학과장됐는데... 울고 싶은 일들만

입력
2021.08.28 10:00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

편집자주

※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왓챠로 나눠 1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

김지윤은 펨브로크대학 영문학과 첫 아시아계 여성 학과장이다. 영광은 잠시, 숱한 난관이 이어진다. 넷플릭스 제공

어려서부터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을 통고한 약혼자를 잊기 위해서라도 책에 매달렸다. 최근 달콤한 열매를 손에 쥐었다. 아시아계로선 처음으로, 여성으로는 최초로 미국 펨브로크대학 영문학과 학과장이 됐다. 노력으로 오랜 시간 실력을 다진 만큼 학과장으로서 야심이 만만치 않다. 비인기 학과로 전락한 영문학과를 살리고 싶고, 교수진에 인종 다양성을 가미하고 싶다. 기존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싶기도 하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지나치게 가깝기 마련.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는 학과장이라는 독이든 성배를 든 40대 아시아계 여교수의 고군분투를 통해 미국의 이민사회와 대학사회를 들여다 본다.

넷플릭스에서 '더 체어' 바로 보기

①'최초' 훈장 달았으나 고달픈 현실

드라마 '더 체어'. 넷플릭스 제공

주인공은 김지윤(샌드라 오)이다. 막 펨브로크대학 영문학과 학과장이 됐다. 과에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수십 년 봉직한 나이든 교수들은 시대를 못 따라간다. 아니 따라가지 않으려 한다. 고답적인 강의에 학생들은 냉랭하다. 반면 아프리카계 신진 교수 야즈(나나 멘샤)는 성인지 감수성 등 사회변화를 바탕으로 강의하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윤은 노교수들을 존중하면서도 강의들을 개혁하고 싶다. 학장인 폴(데이비드 모스)의 구조조정 압박을 이겨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지윤이 맞닥뜨린 문제는 또 있다. 실력 있는 동년배 교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삶이 뒤죽박죽이 된 빌(제이 듀플라스)이 예전 모습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하지만 빌은 제자리로 돌아오기는커녕 강의 중에 나치 경례를 하면서 학생들의 퇴출 운동에 휘말린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윤은 실력 있는 야즈를 종신 교수로 임명하고 싶다. 실력이 빼어난데다 교수진의 다양화를 위해서다. 야즈를 붙들어놓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올해의 최우수강의상을 주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한다. 더군다나 남자 노교수는 강의와 연구 주제가 진보적인 야즈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②연인이냐, 직무냐 그것이 문제로다

'더 체어' 속 대학생들은 학내 부당함에 바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얼마나 사건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행동에 나서는 걸까. 넷플릭스 제공

학교에서만 다사다난한 게 아니다. 지윤의 삶은 집에서도 고달프다. 입양한 멕시코계 딸 주희(에벌리 카가닐라)를 홀로 키운다. 일곱 살 주희는 매사 반항적이다. 진짜 엄마와 아빠를 보고 싶다며 지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마땅치 않다. 연로한 아버지에게 종종 에스오에스를 치지만 내키는 일은 아니다.

학교 안팎으로 꼬였던 일은 더욱 꼬인다. 빌은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나 문제만 더 키운다. 빌이 지윤에게 묘한 감정을 품고 있고, 지윤이 그런 빌이 싫지 않은 것도 변수다. 사람들은 지윤이 연인 빌을 감싸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고 오해한다. 지윤은 사랑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사람들의 오해를 풀며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추구하나 매번 벽에 부딪힌다.


③현실에선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

빌(가운데)은 지윤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데, 지윤의 아버지는 그런 그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지윤이 겪는 일들은 대학사회와 이민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영문학 같은 인문학은 더 이상 학문의 전당에서 존대 받지 못한다. 수익성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 대학 입장에선 학생 모집이 우선이다. 영문학과는 영상세대에게는 고루하기만 하다. 학생들은 인종과 성별이 다양한 교수진을 원하나 현실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노교수들이 늙고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마구 퇴출할 수 없다. 학교에 공헌한 수십 년을 마냥 무시할 수 없고, 그들의 학문 세계를 구식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다. 늙고 기력이 없다고 하나 그들이 언제든지 학과장이나 학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대학 밖은 어떤가. 지윤은 미국인으로 자라 아름다운 언어 영어에 빠져 영문학을 공부했고, 영문학과 학과장 자리에 올랐으나 한인사회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십 가까운 나이에 독신으로 입양아를 홀로 키우는 그녀는 입방아에 종종 오른다. “막차를 놓치면 안 되는” 나이라는 조소 섞인 동정이 따른다. 노년의 아버지는 지윤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매사가 아쉽다. 지윤이 자신의 본거지를 떠나 약혼자와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면 더 순위 높은 대학에서 훨씬 안락한 생활을 했을 거라며 혀를 찬다. 말이 잘 안 통하고 문화가 서로 어긋나는 할아버지와 손녀 관계가 위태롭기도 하다. 선과 악은 불분명하고, 옳고 그름은 불명확한 삶, 지윤은 최선을 다하며 현실 속 최선의 삶을 모색한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재미있으면서 의미 있는 드라마를 만나긴 어렵다. ‘더 체어’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를 화면 안에 품는다. 여전히 백인남성이 힘을 쓰는 대학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비추며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민사회를 보여주며 미국의 현실을 전한다. 대학 내 미묘한 권력관계를 조명해 사회성을 드러내면서도 로맨스를 곁들인다. 강렬하지 않으나 묘하게 사람들 마음을 흔드는 샌드라 오의 연기가 힘을 발휘하는 드라마다. ‘엑스파일’ 시리즈로 유명한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그의 사생활을 안다면 좀 더 재미있을 대목이 있기도 하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87%, 시청자 82%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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