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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백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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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접종 거부자'였다. 원래 순서대로면 5~6월에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걱정해 예약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나는 '고령층일수록 백신 접종에 따른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는 기사를 쓰는 코로나19 담당 기자였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아들의 성화에 아버지는 마음을 바꿨다. 미접종자에게 주어진 추가 기회를 활용, 이달 초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했다. 그런데 걱정이 현실이 됐다. 하루가 지나자 구토와 어지럼증이 시작됐다. 동네 병원에 가서 수액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급기야 대형병원 응급실까지 방문했다. 3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다.
그런데도 의사들은 이상반응으로 신고할 수 없다고 했다. CT와 피검사 등 각종 검사를 했으나 백신과의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인과관계를 확인하려면 MRI 등 더 비싼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미 수십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불한 터였다.
질병관리청은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이란 해당 예방접종과 시간적 관련성이 있으며, 증상 또는 질병이 접종과의 인과성이 확인 또는 인정되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인과성이 확인돼야 이상반응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고를 하려면 반드시 의료진의 승인 절차가 요구된다. 나랏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니, '나이롱 환자'를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겪어본 현실은 달랐다. 보상 여부도 불투명한데 인과성 확인을 위해선 고가의 검사부터 받아야 하는 식이다. 최소한의 장치라고 하기엔 너무 높은 문턱이다. 이런 상황을 돈벌이에 악용하는 병원이 없으리란 법도 없다. 실제로 28일 기준 이상반응 신고 건수는 16만9,124건으로 전체 접종자 대비 0.6% 정도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1,351건만이 피해 보상을 받았다. 그나마 70% 이상은 보상금이 30만 원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얀센을 제외하면 모두 2차까지 접종을 해야 하고, 10월 이후엔 2차 접종까지 마친 고령층을 대상으로 '부스터샷'을 접종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새로운 목표로 내건 '위드 코로나'를 달성하려면 피해보상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당국은 '위드 코로나'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이 80%를 넘겨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해외 사례나 국내 설문조사 결과를 볼 때 의지가 강한 백신 거부층은 20% 안팎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1차 접종 후 크고 작은 부작용으로 2차 접종을 거부하는 비율 또한 무시 못할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설사 부작용이 생겨도 정부를 믿고 맞아도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는 과정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란 얘기다.
백신은 과학이지만, '백신 정책'은 과학을 넘어서야 한다. 아무리 백신의 객관적 위험도가 낮아도,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은 주관적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당장 10월로 예정된 2차 접종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처럼 말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아프니까 백신이라고?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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