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추종하는 건 부족 관습..."여성탄압 계속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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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12:00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는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려는 피란민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경비대를 향해 신원증명서를 흔들며 탈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20년간 지속되었던 아프간 전쟁은 미군이 철수를 완료한 30일 공식 종료됐다. 카불=EPA연합뉴스

돌이켜보면,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모태였다. '소련판 베트남전쟁'으로 한방 먹이려던 미국은 대소련 항전 전사를 후원했고, 이란의 이슬람혁명 수출을 막으려던 사우디아라비아는 페트로 달러를 아낌없이 썼으며, 자국 내 파슈툰 민족주의를 막으려던 파키스탄은 무자헤딘을 감싸안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한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끝났고,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털었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 자리에서 독버섯이 자라날 줄! 미국민의 세금을 자양분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몰라 오마르의 탈레반, 자르카위의 IS가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탈레반의 뿌리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아랍어에서 차용한 ‘탈렙’에 파슈툰어의 복수접미사 ‘안’이 붙어 ‘학생들’이라는 뜻으로, '마드라사'(이슬람 종교학교) 학생을 가리킨다. 1893년 영국이 그은 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선 '듀란드라인' 양쪽은 파슈툰족 거주 지역인데,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파키스탄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이 난민으로 몰려왔다. 난민 청년들은 페샤와르에서 동쪽으로 약 70㎞ 떨어진 아코라 하탁에 사미울 하크가 세운 ‘다룰 울룸 하카니아’에서 '데오반디'(Deobandi) 이슬람 사상 교육을 받았다. ‘지하드 대학’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룰 울룸 하카니아는 이슬람 전사를 양성하는 공장 역할을 하였다.

탈레반을 창설한 몰라 오마르(왼쪽)와 오마르 사후 탈레반을 이끌고 있는 율법학자 출신의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 위키피디아·탈레반 제공

데오반디는 19세기 후반 영국 지배하의 인도 델리 북쪽 데오반드에서 시작한 이슬람 개혁운동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이 종교문제로 분리된 후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에 자리 잡으면서 완고하고 문자적으로 이슬람을 해석하였다. 아프간 난민 청년들은 순수한 이슬람을 표방한 파키스탄 데오반디 교육을 받고 외세 추방이라는 지하드 정신으로 무장하였다. 탈레반은 1994년에 공식적으로 조직되었지만, 사미울 하크가 '천사'라고 부른 탈레반의 설립자 몰라 오마르를 비롯해 탈레반 지도부의 과반수 이상이 ‘지하드 대학’ 출신이다. 총을 든 학생들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의 지원을 받으며 1996년 카불을 점령했고, 2001년 미국에 무너질 때까지 5년간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렸다.

와하비 사상의 영향

탈레반은 '샤리아'(이슬람법)가 지배하는 순수한 이슬람국가를 아프가니스탄에 세우겠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이슬람주의 조직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데오반디만이 아니다. 와하비와 파슈툰족의 오랜 불문 관습법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가 탈레반이 세상을 보는 눈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탈레반은 예외없이 파슈툰족이고, 그중에서도 길자이족이 주축이다.

근대 이슬람 역사에서 데오반디에 먼저 영향을 끼친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사상은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1703-1792)의 이슬람 해석을 가리킨다. 그의 친형 술래이만은 무슬림을 불신자라고 선언하고, 그들이 사는 곳을 전쟁터로 만든다고 와하비 사상을 비판하였지만, 엄격한 이슬람 해석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건국 종교이념이 되었다. 1979년 이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와하비 이슬람 원리주의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탈레반이 2001년 3월 공개적으로 파괴한 힌두쿠시 산맥 실크로드의 바미얀 석불.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아파를 이단으로 보는 와하비들은 1801년 4월 카르발라에서 3,000명에 달하는 시아파 주민을 학살하였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무덤도 파괴하려 들 정도로 이들은 어떠한 형태라도 우상숭배를 배격하였고, 이슬람이 형상을 금지한다고 믿어 사우디아라비아가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하자 1966년 방송국을 공격하였다. 여성 교육 반대는 두말할 것도 없다. 와하비의 영향을 받은 탈레반은 예술 행위를 금지하며 1998년 관련 도서 5만5,000권을 불태웠고, 시아파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바미얀 석불을 파괴하고, 여학교를 폐쇄하였다.

탈레반의 여성관과 인권, 과연 변했을까

탈레반의 여성탄압은 이슬람보다 파슈툰족의 관습법 '파슈툰왈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례로 이슬람에서 여성은 상속권이 있고 신랑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혼인을 거부할 수 있으며, 신랑이 주는 혼례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파슈툰족의 관습은 이와 다르다. 여성은 상속권도, 신랑감이 싫다고 거부할 수도, 혼례금을 받을 자격도 없다. 여성은 철저히 남성에 복속된 존재다. 강제 결혼을 당할 수 있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살인을 하였을 경우, 상대방이 피의 보복 대신 여성을 달라고 하면 원치 않아도 피해자 집안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해야 한다.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되면 죽임을 당하고, 외간 남자와 말이라도 섞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탈레반은 이러한 파슈툰 부족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를 이슬람과 섞었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중서부 헤라트의 한 학교 교실에서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히잡을 쓴 여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탈레반은 "여성이 히잡을 쓰면 학업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고 혼자 집 밖에 나서는 것도 허용될 것"이라며 유화책을 내놨으나 미심쩍어 하는 시각이 더 많다. 헤라트=로이터 연합뉴스

현 탈레반 지도부는 20년 전의 탈레반과 다르다고 하면서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러나 탈레반의 여성관은 이슬람법의 전통이 아니라 파슈툰 부족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슬람법을 따른다면 여성을 과거처럼 억압할 수 없지만 이들이 지키는 것은 이슬람법이 아니다.

혹자는 탈레반을 겪어 보지 못한 25세 이하 인구가 전 국민의 60%가 되는 현실에서 탈레반이 과거처럼 여성을 억압하면서 국가를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족의 관습을 이슬람으로 오독하면서도 이슬람의 순수성을 지키고 있다는 오판을 멈추지 않는다면, 25세 이하 인구가 90%여도 여성 억압책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는 여성뿐 아니라 시아파와 비무슬림 등 소수 종교인을 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슬람법을 따른다면 시아파를 이단시할 수 없고, 소수 종교인을 백안시할 수도 없다. 그러나 탈레반은 초민족적 무슬림 세계를 지향하지 않고 파슈툰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이슬람을 오독하고 있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두운 미래

탈레반과 같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는 사실은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믿는 현대 문명사회의 수치다. 이들의 이슬람 해석은 무슬림 세계에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파슈툰 부족의 전통이라는 속살을 이슬람이라는 외피로 교묘히 포장한 것이 탈레반의 이슬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열린 옛 소련권 안보협력체(CSTO) 정상회의에서 러시아는 아프간 분쟁 상황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그렇다면 집권세력으로서 탈레반은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까. 일단은 스스로 공언한 대로 비파슈툰족을 끌어들여 포용적 이슬람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자구책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구상하는 정부에 들어갈 사람으로 벌써 미국의 관타나모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테러리스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통합적이고 원만한 정부구성이 되지 않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국은 탈레반을 지원할 것이고, 러시아도 전략적으로 탈레반을 대하면서 굳이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니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은 여성을 억압하고 인권을 무시해도 주변의 무관심 속에 꾸역꾸역 살아 숨 쉴 것이다.

마수드가 이끄는 반탈레반 저항세력은 외부의 도움 없이 현 정세를 뒤엎을 가능성이 없고, IS-호라산도 탈레반에 직접 대들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외로이 저항을 지속하고 있는 마수드에게 타지키스탄이 무기를 공수하고 있고, 이에 놀란 파키스탄이 내전을 막고자 타지키스탄으로 달려간 것은 주목할 만하다. 파키스탄은 자국의 파슈툰 민족주의를 제어하기 위해 꾸준히 탈레반에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이고, 인도 역시 카슈미르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탈레반이 카슈미르 무슬림과 연계되지 않도록 유화책을 쓸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과 굳이 척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니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경영'은 당분간 큰 어려움 없이 순항할 것이다.

반탈레반 주요 저항세력의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가운데). 아프간의 ‘국부’로 불리는 마수드 장군의 아들인 그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탈레반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요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18세기 이래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에 성공한 적이 없는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다. 마수드의 지론대로 아프가니스탄에는 스위스식 연방제가 가장 적합하다. 그러나 탈레반이 마수드의 제안을 따를 리 없다. 전 인구의 과반이 되지 않는 파슈툰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려 한다면 탈레반은 다시 실패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를 막을 힘도 없으니, 국제사회가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탈레반에 져도 참 지독하게 졌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아프간-중동지역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이슬람학 석사,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자문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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