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윤희숙의 이상한 '책임 정치'

입력
2021.08.26 18:00
26면
구독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불법 의혹과 관련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이준석 대표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뉴스1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불법 의혹과 관련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이준석 대표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사퇴를 만류하고 있다. 뉴스1

불법 없다면서도 의원직 사퇴 강수
권익위 조사 "의도 의심스럽다" 비판
인정 않고 남 탓 내로남불과 다른가


가족의 부동산 불법 거래 혐의가 드러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의원직 사퇴, 경선 중단으로 대응하자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는 아버지의 농지 매입과 무관하지만 정권 교체를 위해,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사퇴한다고 25일 밝혔다. “염치와 상식의 정치” "내가 책임지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6년 전 호적을 분리하고 독립 가계가 된 친정아버지를 무리하게 엮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는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비난했다. 의원직을 내던진 충격, 지지의 마음을 덜어내고 보면 이 대응은 이상하다.

제 명의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공직자는 없으니 가족 조사는 기본이다. 윤 의원 스스로 가족의 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해 놓고 ‘엮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하고 독립 가계가 되는 것도 보통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돈은 호적을 가리지 않는지라 무관함을 확인하려면 부친이 자기 돈으로 농지를 구입했는지 자금 출처를 수사할 필요가 있다. 현재로선 윤 의원이 연루됐다고 단언할 수 없고, 같은 당 김웅 의원의 주장처럼 ‘나는 임차인이다’ 연설을 한 탓에 걸려들었다고 할 수도 없다. 애초에 문제가 된 것은 농업경영 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 3,300평(1만871㎡)을 산 아버지가 농사를 지은 적이 없고, 몇 달간 주소지만 대리 경작한 주민의 집으로 옮겨놓은 사실이다. 농지법·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를 눈앞에 두고 수사를 의뢰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권익위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부친이 2016년 매입한 땅은 하필이면 부동산 시장이 뜨거운 세종시, 하필이면 산업단지들 인근이다. 일각에선 윤 의원이 일했던 한국개발원(KDI)이 국가산업단지 예비타당성조사 기관인 점을 들어 내부 정보 이용이 아닌지 의심한다.

윤 의원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제기된 의혹은 송구하다”고 했다면 그의 ‘염치와 상식’을 높이 샀겠다. 그러나 “공무원 장남을 걱정해 온 아버지가 위법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권익위 조사를 부정하면서 사퇴한다니 무엇을 책임지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실체 없는 “야당 의원 평판 흠집내기”인데 이것이 왜 정권 교체에 위협이 되는지도 납득하기 어렵다. 상식적인 대응은 수사를 통해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다. 유죄로 드러나도 순전한 아버지의 문제라면 유권자의 뜻을 저버리고 의원직을 던질 일이 아니다. 사과하고 끝낼 일이다. 다만 불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난다면 윤 의원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책임 정치 이전에 ‘법 앞의 평등’이다.

윤 의원은 상식과 염치를 언급하며 여느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했을 터다. 지금 정권 교체 요구가 이토록 높은 것도 상식이나 염치와 거리가 먼 여권의 행태가 질리도록 반복된 탓이다. 한명숙 전 총리부터 정경심씨 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유죄 판결을 “정치적 판결”이라며 부정하고, 투기 엄단을 외치며 부동산 증식에 목을 맨 여권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과연 윤 의원은 다른가. 결단의 제스처는 분명 남달랐으나 아쉽게도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문화, 법과 제도를 존중하는 가치 회복에 기여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불법 혐의에 대해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의심을 제기하며 조사기관을 흔들었다. 자신을 희생양으로 부각시켜 정권 교체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그 착한 사람이 불법을 저지를 리가 없다던, 검찰과 법원이 정치적이어서 문제라던, 나를 밟고 가라던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과 다른가. 윤희숙의 ‘책임 정치’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김희원 논설위원
대체텍스트
김희원뉴스스탠다드실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