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탈레반의 상부상조... 美 경제제재 속 숨통 틔우나

입력
2021.08.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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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휘발유 등 아프간에 석유제품 수출 재개
이란은 현금난 해소·탈레반도 연료 부족 타개
"양측 전략적 우호 관계 맺으면?美 영향력 줄어"

지난달 7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외무부 청사 회의실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대표단(왼쪽)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대표단(오른쪽)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가운데) 이란 외무장관의 주재하에 협상을 하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지난달 7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외무부 청사 회의실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대표단(왼쪽)과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대표단(오른쪽)이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가운데) 이란 외무장관의 주재하에 협상을 하고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이란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에 석유제품 수출을 재개했다. 이번 거래로 이란은 그동안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로 막혔던 자금줄에 숨통을 틔우게 됐고, 휘발유 등 연료 부족 사태를 겪던 탈레반도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됐다. ‘이슬람교’라는 울타리는 같지만 종파가 서로 다른 탓에 사이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던 이란(시아파)과 탈레반(수니파)이 ‘반미(反美)’라는 공통분모 속에 상부상조를 하게 되면서, 향후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은 탈레반과의 합의하에 이번 주부터 아프간에 석유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의 감독을 받으며 아프간 정부에 석유를 판매해 왔는데, 지난달부터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 간 무력 충돌이 거세지면서 수출길이 막혔다. 투르크메니스탄 등 인접국들도 최근 아프간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이 이란에 “석유 수출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다시 이란산(産) 휘발유 등이 아프간에 공급되게 된 것이다. 탈레반은 물가 안정을 위해 이란 석유에 대한 수입 관세를 70% 낮췄으며, 이에 따라 양측의 하루 교역량은 올해 초 수준인 500만 달러(약 58억 원) 정도까지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거래는 이란과 탈레반 모두에 이익이다. 미국 등의 고강도 경제 제재로 돈줄이 꽉 막혀 버린 이란으로선 석유 판매를 통해 상당량의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이란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아프간 접경 지역에서의 무역 거래 대부분이 현금으로 이뤄지면서 미국 제재를 피해 이란으로 더 많은 달러가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탈레반도 ‘가뭄에 단 비’를 만난 격이다. 현재 아프간은 휘발유 가격이 톤당 900달러(약 105만 원)까지 치솟는 등 물가상승 위기는 물론, △국제 사회의 원조 중단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금 동결 등의 악재를 겪고 있다. 실제 달러 부족으로 아프간 통화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생필품 수입 가격도 급등했다. 탈레반으로선 민심 안정을 위해 경제난부터 해결해야 했고, 이를 위해선 일단 이란과의 무역 재개가 절실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탈레반은 이번 석유제품 수입 대금을 마약(헤로인) 원료인 양귀비 판매를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탈레반이 마약 거래로 연간 10억 달러(1조1,7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WSJ는 미국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과 탈레반이 경제를 토대로 본격적 협력 관계를 맺으면 역내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미국에 맞서기 위해 종파를 뛰어넘어 전략적 우호 관계를 맺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도 이를 지원하면 미국의 ‘입김’도 크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전화 회담에서 “아프간 내정 불간섭” 원칙에 합의하는 등 사실상 탈레반의 아프간 통치를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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