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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위기의 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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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이용훈 사법부가 야심 차게 출범시킨 국민참여재판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 2008년 도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국민참여재판은 공교롭게도 이번 정부 들어 295건→180건→175건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지난해에는 96건의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됐으며 신청 건수 대비로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법민주화를 위해 국민을 재판 당사자로 참여시킨다는 사법개혁의 명분이 무색할 지경이다.
□ 국민참여재판 수요가 꺾인 것은 아니다. 지난해 신청 건수는 865건으로 제도 도입 첫해 233건에 비하면 거의 4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건수도 꾸준히 증가해 실제 국민참여 형태로 진행되는 재판 비율은 2011년을 고비로 하락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피해자 등이 원치 않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 직권으로 피고인의 신청을 배제하고 일반 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 최근 그 비율이 30%까지 높아졌다.
□ 문제는 재판부가 제도를 소극적으로 운용할 여지가 크다는 데에 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에도 일반 재판을 할 수 있다는 게 국민참여재판법 규정이다. 법규가 포괄적이다 보니 재판부는 배제결정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배심원 선정을 포함해 늘어나는 업무 부담 또한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기피하는 요인이다. 과거에는 법원이 전담재판부를 설치하고 인사고과에도 반영하면서 참여재판을 독려했으나 고등부장 승진 제도가 폐지되면서 동기 요인마저 사라졌다.
□ 법조계에서 국민참여재판 위기를 지적한 지는 오래됐다.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포괄적인 배제결정 규정과 피고인으로 한정한 신청자격 등을 수정하자는 의견을 2012년부터 개진하고 있다. 미국 배심원 재판처럼 판결에 대한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법부의 외면 속에 법 개정은 진척이 없다. 국회도 재판 활성화를 위한 예산 증액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국민의 참여로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을 견제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자는 취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국민참여재판이 고사하기 전에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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