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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음식이 맛없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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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토요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25> 확연히 다른 영국과 프랑스의 요리문화
경제학은 주어진 제약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개별 경제 주체가 보다 큰 효용을 누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실제 경제 현장에서도 우리의 결정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 가장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주는 재화의 소비 묶음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인류의 발전과정 역시 특정 국가 내지 민족이 자신들이 직면한 제약조건하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결산물인 경우가 많다. 이웃나라인 영국과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상이한 것 또한 여기에 기인한다.
우리는 모처럼 멋진 저녁 식사를 계획할 때 후보군 중 하나로 프랑스 요리를 올려놓곤 한다. 반면 영국 요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영국의 요리가 남다른 요리문화라 칭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우수한 음식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영국을 방문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요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 놀라는 경우가 많다. 아침 식사를 위해 영국 시내 레스토랑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봐도 아침 메뉴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하나만 있는 경우가 흔하다.
외국인이 다른 메뉴가 없냐고 종업원에게 반복해서 묻다 보면, 인근 테이블의 영국인들은 아주 친숙한 장면을 본 것처럼 지그시 미소를 던지기도 한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형편없는 요리를 먹는다는 유언비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영국이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식문화를 갖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만의 요리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일단 기후가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보다 떨어지고, 기후가 적합하지 않아 자신들을 대표할 와인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영국에서 만든 빵 또한 밀의 품종이 좋지 못해 맛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산출량이 풍족하지 못한 식자재를 갖고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본다는 것 자체가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이러 이유로 쾌적한 기후 환경에서 살고 있는 유럽 대륙 사람들과는 달리 영국인에게 먹는 것이란 귀한 것이었으며,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먹는 것은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행위로 인식했던 영국인들이 광활한 식민지를 얻게 되었을 때, 원활한 식자재를 생산하기 위해 플랜테이션을 도입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들에게 식민지의 광활한 영토란 오랫동안 부족하기만 했던 식자재를 원활히 확보하기 위한 대상이었을 뿐이지, 음식문화를 만들어 나갈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자원으로 여겨왔기에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는 방식으로 ‘식’문화를 이끈 것이다.
영국인의 후예들이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패스트푸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설명된다. 영국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미국인에게 식자재란 다양한 요리문화를 만들어 내는 기초 재료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손실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요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다. 결국 미국인들은 컨베이어벨트에서 공산품을 만들어 내듯이 패스트푸드라는 요리 아니 음식자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영국과 미국이 음식을 문화 내지 레저가 아니라 자원으로 인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랫동안 음식물에 대한 열악한 제약조건 속에서 살아왔던 그들의 상황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반면,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농산물 수출국일 정도로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풍족한 토양과 기후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자연 환경 덕분에 프랑스는 먹는 문제에 대해선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따라서 다양한 고민과 조합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 이것이 프랑스가 오늘날과 같은 우수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지금도 프랑스는 패스트푸드 문화를 단순히 배만 채우기 위한 비문화적인 행태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국에 맥도널드가 널리 퍼지는 것을 가장 크게 저항하고 있다.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자리에서 “음식이 맛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프랑스 국민들 또한 영국, 독일 등 인근 국가의 요리들은 농민의 요리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요리가 상류사회의 요리라고 자부한다. 이처럼 프랑스는 요리를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비옥한 토지와 축복받은 기후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랑스가 훌륭한 요리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크 왕국 시절인 8세기경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요리 수준은 형편없었다. 당시 문헌들을 보면 많은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기록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그들이 주로 먹었던 빵 또한 맛있고 말랑말랑한 먹기 좋은 빵이 아니라 돌처럼 딱딱해 따뜻한 수프에 적시지 않고서는 먹기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12세기에 들어서도 프랑스인은 구운 고기와 데친 야채를 먹는 것이 전부였다. 이는 당시 영국의 요리문화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프랑스 식문화가 바뀐 것은 16세기 프랑스가 백년전쟁에 승리하고 절대왕정을 공고히 하면서부터다. 당시 프랑스 왕가에 이탈리아의 부호 메디치 가문의 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시집을 오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지역과도 다양한 교역을 수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농산물과 조리법을 접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이런 음식문화가 이탈리아 출신 왕비로부터 프랑스로 전달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실제 프랑스 요리를 소개하는 서적들을 보면 오늘날의 프랑스 요리법 내지 음식 예절은 메디치 가의 카트린이 프랑스 왕가로 시집올 때 가져온, 대량의 식자재와 디저트 등의 조리법, 그리고 그녀가 프랑스 왕족에게 보여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식탁 매너가 원형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 문헌에는 카트린이 데려온 요리사가 수프, 베샤멜 등의 소스, 브로콜리의 요리법, 달콤한 잼과 케이크, 설탕과자, 아이스크림 등을 프랑스 왕궁에 처음 선보였고, 왕실과 많은 귀족들이 그 맛의 황홀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한번 눈높이가 높아진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영지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그들은 영지에 카트린이 소개한 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식재료를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비옥한 토지와 적합한 기후는 이러한 그들의 시도에 풍족한 결실로 답해 주었다.
식사 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디저트 문화가 퍼지고 난 뒤에 프랑스의 지배계층은 얼음을 얻기 위해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에 배를 보내 얼음을 운송해 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당시 프랑스의 지배계층이 얼마나 식문화에 열광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음식문화는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16세기 앙리 4세의 아들 루이 13세가 스페인 왕의 딸과 결혼하면서 프랑스의 요리문화가 스페인 왕가에 전달된다. 18세기에는 루이 15세가 폴란드 왕의 딸 마리아 레슈친스키와 결혼하면서 폴란드에도 역시 프랑스 요리가 전파되기 시작한다. 기후 환경이 쾌적해 농산물 생산에 대한 제약 조건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스페인은 이를 계승 발전시켜 나름의 음식 문화를 만들어 갔다. 그러나 기후 환경이 열악한 폴란드는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음식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나 누군가를 융숭하게 대접할 때 프랑스 요릿집, 내지 스페인 요릿집 등을 찾곤 한다. 다채롭고 풍성한 요리로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함이다. 이들 나라가 이 같은 요리문화를 갖게 된 것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계기로 인해 형성된 부분 못지않게 넉넉한 식자재로 여러 요리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조건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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