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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이 옥수수의 비밀, 엉뚱한 위치로 옮겨 다니는 전이인자 

입력
2021.08.28 05:30
13면

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 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옥수수 알갱이가 꼭 노란 것은 아니다. 전이인자가 끼어들어가면 보라색 색소 유전자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노란색이 되고 전이인자가 빠져나가면 유전자의 발현으로 보라색 반점이 생긴다. 게티이미지뱅크

옥수수 알갱이가 꼭 노란 것은 아니다. 전이인자가 끼어들어가면 보라색 색소 유전자가 정상 작동하지 않아 노란색이 되고 전이인자가 빠져나가면 유전자의 발현으로 보라색 반점이 생긴다. 게티이미지뱅크

해변가 작은 마을의 시골길 바닥에서 인적 뜸한 골목으로 안내하는 파란색 화살표를 발견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도착지는 조금 엉성한 매력의 B급 소품들을 파는 작은 상점이다. 행여 지나칠라 골목길 입구에 자리한 옥수수 트럭 사장님이 재차 길을 알려주었다. 마을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푸른 대문의 독특한 상점과 난데없는 옥수수밭이 보였다. 오즈의 마법사를 찾는 허수아비가 걸어올 것만 같은 벽돌 길을 따라 걸으며 트럭에서 산 찰옥수수를 베어 물었다.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알록달록한 알갱이들이 오즈의 성 너머의 무지개처럼 터졌다.

각양각색의 개성을 가진 이 옥수수 알갱이의 색깔에 대해 주의 깊게 탐구했던 과학자가 있었다. 미국의 유전학자인 바바라 맥클린톡은 노란색 알갱이나 보라색 알갱이뿐만 아니라 모자이크처럼 반점을 가진 알갱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유전체를 가지는 하나의 낱알에서 불규칙한 색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시의 유전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희귀한 돌연변이와는 다르게 보라색 반점의 알갱이는 매우 흔하게 발견되었는데, 옥수수 알갱이마다 그 반점의 크기나 형태가 다양했다.

맥클린톡은 다른 유전자 사이로 끼어들거나 빠져나오면서 위치를 이동하는 유전물질을 가정했다. 유전체 내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 있는 이러한 DNA 조각을 '전이인자'라고 한다. 맥클린톡은 전이인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제안하면서 1951년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라색 색소를 형성하는 유전자 부위의 중간에 전이인자가 끼어들어가면 색소 유전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색깔이 없는 노란색 알갱이가 만들어진다. 이 전이인자가 다시 빠져나온다면 그때부터 색소 유전자가 발현되어 보라색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이인자가 빠져나오는 시기에 따라서 보라색 반점의 크기가 다양해진다.

맥클린톡의 연구는 한동안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DNA가 유전물질임을 증명하고 DNA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던 당시 과학계에 생명체의 정해진 운명과도 같은 DNA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 밖의 발상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세균의 유전체에서 위치를 이동하는 전이인자가 관찰된 후에야 맥클린톡의 제안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1983년 맥클린톡은 선구적인 업적을 인정받아 81세의 나이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유전체에서도 전이인자와 관련된 서열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 과거에는 쓸모없는 쓰레기 유전자라고 불리던 부분이다. 전이인자의 움직임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질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중요한 연구 과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암호화하지는 않지만 유전체 모두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다소 엉성하고 엉뚱한 모습으로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B급 소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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