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테러 위험 '실질적 위협'인가… "정상국가 원하는 탈레반, 테러 통제할 것"

입력
2021.08.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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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 세력 약화·탈레반과 IS는 적대 관계
전문가들 "아프간, 이젠 무장투쟁 기지 못 돼"
중국·러시아도 압박… "탈레반 변화해야 생존"
"테러 허용 않겠다"는 탈레반 약속, 진심일까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이 2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이 2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내 이슬람국가(IS) 계열 테러리스트들이 미군과 동맹군, 무고한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연장 가능성이 점쳐졌던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완료 시한(31일)을 애초 원안대로 고수한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유들 중 하나로 ‘테러 위험’을 들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하면서 국제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 무장투쟁)의 위협도 커진 만큼, 하루빨리 아프간을 떠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었다.

미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IS 아프간 지부로 알려진 IS-K를 비롯해 △알카에다 △파키스탄 탈레반(TTP)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MU) 등 테러단체가 여럿 존재한다. 영국 등 서방 국가들도 연일 테러리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위험성이 과대 평가됐다는 비판적 견해도 적지만은 않다. 테러단체의 세력과 기반이 크게 약화한 데다,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길 원하는 탈레반이 테러단체와는 명확히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테러 위협이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탈레반은 수년간 카타르 도하에서 진행된 평화협상 과정에서 ‘지하디즘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거듭 밝혀 왔다. 또 테러단체가 다른 국가를 공격하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강경 발언도 쏟아냈다. 특히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의 유대 관계를 의심하는 외부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모하메드 나임은 22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방송 알하다스TV와의 인터뷰에서 “알카에다가 발 디딜 곳은 이 나라 어디에도 없다. (현재)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도 이런 탈레반 주장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인다. 테러단체가 재건될 위험이야 실재하긴 하나, 아프간이 과거와 같이 이슬람 무장투쟁의 ‘핵심 기지’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전망이 다수다.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숨겨 준 대가로 미국과 20년 전쟁을 치르면서 탈레반도 뼈아픈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미 싱크탱크 퀸시연구소 아나톨 리벤 선임연구원은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9·11 테러 이전 탈레반은 안전하게 권력을 잡고 있었지만, 알카에다로 인해 모든 걸 잃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탈레반은 바보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테러단체들이 예전 같은 존재감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알카에다는 미국의 대(對)테러 작전으로 전력 대부분을 상실했고, IS의 경우 탈레반뿐 아니라 인접국들도 실존적 위협으로 여겨 적대시하기 때문에 다각도로 억제력이 작동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리벤 연구원은 “탈레반이 알카에다를 축출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며 “IS의 위협은 분명 존재하나 인접국들은 IS와 싸우는 탈레반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내다봤다.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국외로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외교부 제공

25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국외로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외교부 제공

특히 탈레반에 절실한 것은 국제사회의 인정이다. 대외적으로나마 “포용 국가”를 공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 탈레반 정권(1996~2001년)을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뿐이었다. 독일국제안보연구소 크리스티안 바그너 연구원은 “탈레반은 정치 체계를 변경해야만 더 많은 나라로부터 정상국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여기엔 이슬람 테러단체에 대한 적극적 대응도 포함된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도 탈레반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다. 아프간과 인접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부활을 우려하는 중국은 지난달 말 탈레반 지도부를 톈진으로 불러 “모든 테러단체와 철저히 선을 그으라”고 요구했다. 러시아도 자국 앞마당인 중앙아시아 지역 안보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탈레반과 대화 채널을 유지해 왔다. 탈레반 입장에선 몇 안 되는 우군 중에서도 미국과 맞먹는 대국인 두 나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도탄에 빠진 아프간 경제 재건을 위해서도 중국 및 러시아의 지원이 꼭 필요한데, 선결 조건은 당연히 ‘테러 방지’다.

탈레반은 23일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 영토 안에서 무장세력이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걸 다시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시금 약속했다. 또 “역내 국가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리를 ‘아프간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해 주기를 희망한다”며 “우리는 국제안보부터 기후변화까지, 전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와 화해하고 협력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탈레반의 공언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는 향후 이들의 행보, 일차적으로는 새 정부 구성 및 출범 과정에서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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