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과 여 부사관…죽음으로 고발하는 비극 언제까지

입력
2021.08.28 04:30
12면

<33>처녀 귀신이 소복을 입고 있는 이유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 수의. 단국대

조선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비단 수의. 단국대

한여름에 귀신 이야기를 한번 쓸 계획이었다. 도쿄올림픽 즈음해서 중요한 이슈가 많이 생기는 바람에 그만 지나쳤는데, 지난주에 하미나 작가의 글 '영화 속 귀신과 시체가 '여성'이어야 하는 이유'를 의미 있게 읽었기에 이어서 쓴다. 자, 문제를 하나 내보겠다. 왜 우리나라 전설 속 처녀 귀신은 다들 소복(素服·흰옷)을 입고 나타날까?

귀신이기에 자신의 장례식에서 입혀졌던 하얀 수의(壽衣)를 그대로 입고 등장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 장례 문화와 다르다. 보통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 중에서 제일 좋고 예복에 가까운 옷을 골라서 수의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관복을, 선비들은 유학자의 도포를, 결혼한 여자의 경우 혼례식 때 입었던 원삼을. 모두 색채가 있는 화려한 옷이다. 새로 수의를 지을 경우에는 각각 형편에 따라 비단, 무명, 삼베 등을 겉감으로 삼고 흰 안감을 대어 만들었다. 무덤에서 미라가 된 시신과 함께 출토되어 박물관에 전시된 수의들을 살펴보자.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평상시 입던 의복이나 새로 장만한 의복을 수의로 사용하였고, 후기에 오면서 염습용 수의를 따로 만들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재와 같은 희끄무레한 삼베 수의가 기본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1934년, 일제는 물자 수탈을 위해 사치스럽다는 핑계를 대어 비단 수의를 금지했다. 그전까지는 아주 가난한 경우가 아니면 죽은 사람 특히 부모의 시신에 삼베옷을 입히지 않았다. 삼베옷은 수의가 아니라 부모를 여읜 자식이 죄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입는 상복이었다. 이렇게 볼 때, 조선시대의 처녀 귀신들이 입고 등장하는 소복은 장례식 때 입혀진 수의가 아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귀신 '목이 달랑달랑한 닉'. 포터모어 위키 홈페이지 캡처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귀신 '목이 달랑달랑한 닉'. 포터모어 위키 홈페이지 캡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야기 속의 귀신들은 보통 죽었을 때 모습과 차림새 그대로 나타난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기숙사의 유령 '목이 달랑달랑한 닉(Nearly-headless Nick)'이나 갑옷을 입고 목이 잘린 채 나타나는 '삼국지'의 관우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처녀 귀신들이 소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은 그 옷이 죽을 당시의 복장이었기 때문일까?

이것도 좀 이상하다. 최영 장군이나 단종의 경우 죄인으로 몰려 죽었다. 그러나 사후 전설에서 무속의 신이나 산신령이 된 이들은 평소 가장 위세가 높았을 때의 공식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다. 최영 장군은 장군의 갑옷을, 단종은 왕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사망할 당시의 복장이 아니다. 이 차이는 뭘까? 우리나라의 남자 귀신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여자 귀신들은 소복을 입고 나타날까?

장화와 홍련은 소복 차림으로 죽지 않았다

1972년 영화 '장화홍련전' 포스터. 다음영화

1972년 영화 '장화홍련전' 포스터. 다음영화

대표적인 처녀 귀신 이야기인 '장화홍련전'을 놓고 이 궁금증을 풀어가 보자.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은 조선 후기 효종 때 평안도 철산 부사로 부임한 전동흘이 처리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철산의 좌수 배무룡은 장화와 홍련 자매를 두고 부인 장씨가 세상을 떠나자 허씨에게 새 장가를 든다. 배 좌수와 허씨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고 자매가 성장하자 허씨는 자매에게 들일 혼수 비용이 아까워졌다. 허씨는 계략을 꾸민다. 장화에게 낙태했다는 누명을 씌워 연못에 빠져 죽게 만든다. 이 사실을 알고 슬픔에 빠진 홍련도 그 연못에 가서 뛰어든다.

귀신이 된 자매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철산 부사를 찾아가지만 다들 부임 첫날에 놀라서 죽는다. 그러던 중, 정동우라는 사람이 철산 부사로 자원해 온다. 그는 귀신 자매를 만나도 놀라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계모 허씨를 처형하고 연못에서 자매의 시신을 꺼내 장례를 치러준다. 한이 풀린 자매 귀신은 소복이 아닌 예쁜 옷을 차려 입고 부사에게 나타나 감사 인사를 한 후 사라진다. 한편, 배 좌수는 처녀에게 장가들어 장화홍련의 환생인 쌍둥이 자매를 얻는다. 자매는 자라서 평양 부잣집 쌍둥이 아들에게 각각 시집가서 행복하게 산다.

소설을 읽어보면, 장화와 홍련은 외출복 차림 그대로 연못에 빠져 죽었다. 장례식을 치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귀신이 되어 사또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러 나타날 때에도 조선시대 양반집 아가씨들의 옷차림 그대로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 차림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왜 귀신이 된 장화홍련은 소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영화 '장화홍련전'의 한 장면. 소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다음영화

영화 '장화홍련전'의 한 장면. 소복 차림으로 등장한다. 다음영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선택

우리 전통 의복인 한복에서 소복, 즉 흰옷은 속옷 겸 잠옷이다. 비록 귀신일지라도 부끄럼 많을 처녀들이 사람들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굳이 소복 차림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처녀가 죽던 당시의 상황을 의미한다. 즉 처녀들은 외부의 목격자 없이 혼자 잠자던 밤중에 속옷 차림을 보여도 될 가족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을 강요받아 억울하게 죽었던 것이다. 장화홍련 자매처럼. 그래서 나중에 철산 부사에게 감사 인사하러 다시 올 때는 여전히 귀신 상태지만 소복이 아닌 평상복을 예쁘게 입고 오는 것이다. 이제는 억울함이 다 풀렸으므로.

영화 '장화홍련전'의 한 장면. 귀신일 때의 복장과 달리 소복을 입은 채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음영화

영화 '장화홍련전'의 한 장면. 귀신일 때의 복장과 달리 소복을 입은 채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음영화

한편, 장화가 죽는 과정은 매우 무섭다. 허씨는 쥐를 죽여 낙태한 증거로 위조하여 배 좌수를 속인다. 이때 배 좌수의 반응이 이상하다. 딸에게 사연을 물어보거나 상대 남성을 찾아볼 시도를 아예 하지도 않고 당장 장화를 죽이는 데에 동의한다. 아버지인데도 피해 여성인 딸보다 가문의 명예가 우선이다. 얼른 딸을 죽여 상황을 덮어버릴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데, 별당에서 외부인과의 접촉 없이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자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상황은 근친 성폭력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배 좌수가 놀라서 빨리 장화를 죽이려 한 이유는 뭘까. 누구의 죄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덮으려 한 것일까. 이 부분 이야기는 이 글의 전체 주제에서 어긋나므로 이 정도에서 마친다. 이야기 속 처녀 귀신들이 가정 내 폭력의 희생자였던 경우가 많았던 사실만을 강조한다.

다시 돌아가자. 장화홍련 자매는 돌봐줄 친엄마가 없는 가정 내의 약자였다. 친아버지가 있기는 했지만, 배 좌수는 계모 허씨가 주도하는 자매 살해를 방관하고 있었다. 자매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의 울타리 내에서 보호받지 못했다. 억울한 누명을 써도 항변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해결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가부장인 아버지조차 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자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야 외부 사회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 귀신이 되어서야 여성들의 사회적 고발이 받아들여져서 가해자를 벌할 수 있었다.

끝나지 않는 처녀 귀신 이야기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평택=뉴스1

여성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평택=뉴스1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처녀 귀신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 여성을 억압하는 유교 관습이 정착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사회가 불안해진 상황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여성 귀신 등장 이후 공동체의 질서를 회복하는 자들은 남성이다. 정동우 철산 부사처럼. 이는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쓰인 귀신 이야기 야담을 즐겼던 사대부 남성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같은 공범인데 허씨와 허씨가 낳은 아들들은 벌을 받지만 배 좌수는 처벌당하지 않고 세 번째 장가까지 가게 만들어 주는 이유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죄를 지어도 가부장 권력은 안전하게 지켜진다.

처녀 귀신 이야기는 죽어서야 자신이 당한 부당한 폭력에 대해 사회적 요구를 할 수 있는 여성들의 열악한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처녀 귀신들이 입은 소복은 속옷과 잠옷 차림을 보고 지내는 가까운 자들, 지켜주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도리어 가해를 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시위 복장이었다.

올해, 공군과 해군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군 부사관이 사망했다. 육군에서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여군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실이 최근 보도되었다. 피해 여군들은 군의 부실한 처리 시스템, 회유와 협박, 부대 내 2차 가해 등 자신이 긍지를 갖고 복무했던 곳에서 동료들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여 죽음으로 외부에 고발했다. 끔찍하다. 죽어서 소복을 입어야만 피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 고발이 진지하게 처리되는 이 조선시대는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 지금은 21세기다. 모든 피해자는 각자의 옷을 입고 '살아서' 고발하고 다시 공동체로 일상으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박신영 작가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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