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391명, 탈레반 압제 벗어나 한국 땅 밟는다

입력
2021.08.26 00:1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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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수송기 3대 투입, 26일 오전 인천공항 도착
'인도적 체류자' 지위 받을 듯... 反난민 정서 관건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이동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24일 국내 이송을 위해 카불 공항에 도착한 한국 공군 수송기로 이동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피란민 391명이 26일 한국 땅을 밟는다. 아프간 재건 사업에 참여했던 한국 기관들을 현지에서 도운 이들과 가족이다. 정부가 해외분쟁 지역에서 군사력을 동원해 수백 명 규모의 외국인을 빼낸 건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도의적 책임을 다한 것”이라며 아프간 조력자들의 구출과 국내 이송을 환영했다. 하지만 2018년 예멘인 유입 사태에서 보듯, 한국 사회의 ‘반(反)난민 정서’ 또한 만만치 않아 이들의 수용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정부 "한국 도운 '동료'"... 수용 정당성 강조

외교부는 그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 그리고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380여 명이 오는 26일 국내에 도착한다고 25일 전했다. 한국 외교관들이 카불 공항 안에서 한국행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그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우리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 그리고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380여 명이 오는 26일 국내에 도착한다고 25일 전했다. 한국 외교관들이 카불 공항 안에서 한국행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다. 외교부 제공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해온 현지인 직원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 부모 등 391명의 국내 이송을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재 아프간 카불 공항에 대기 중이며, 우리 군 수송기를 이용해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입국 뒤에는 방역 절차를 거쳐 당분간 충북 진천의 인재개발원에 머물게 된다.

외교부는 아프간 피란민 수용을 결정한 이유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이란 국제적 위상 등을 제시했다. 최 차관은 특히 이들을 “동료”로 지칭해 한국에 헌신한 공로를 높이 샀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지 조력자들에 대한 예우는 ‘매머드급’ 수송 작전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는 작전에 공군 수송기 C-130J 2대와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KC-330 1대 등 3대를 투입했다. 안전 확보를 위해 무장 병력 60~70명도 동행했다. 혹시 모를 탈레반의 공격에 대비해 지대공 미사일 회피 가능을 갖춘 C-130 수송기가 카불 공항과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왕복하면서 피란민을 실어 날랐다. 사실상의 군사 작전이었다.

최종 이송 규모는 정부가 당초 목표로 한 427명에는 못 미쳤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나머지 36명은 제3국행을 희망하는 등 아프간 잔류 의사를 전해왔다”면서 “차후 한국행을 원하면 개별적으로 확인해 (추가 이송)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反난민 여론 의식 "조력자만 구출"

한국 입국을 앞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 외교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국 입국을 앞둔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한국 외교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이송 대상은 “한국에 적극 협력한 인사”로 철저히 국한했다. 대부분 주아프간 한국대사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 한국병원, 한국직원훈련원, 지방재건팀(PRT)에서 근무하며 한국과 연을 맺었다. 의사와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사 등 전문인력이 다수를 차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짧게는 1년, 길게는 7~8년 동안 한국 정부와 함께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적잖은 우방국들도 한국과 비슷한 이유를 들어 아프간인 조력자 이송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1만5,000명, 영국은 1,700명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도 특별비자 1,500건과 5,000건의 인도적 비자를 발급한 상태다.

정부는 일반 난민 수용 가능성에는 “검토하지 않는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다. 한국을 도운 전문인력을 놓고도 벌써부터 논란이 분분한 점을 감안할 때 반대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한국이 ‘난민 피난처’로 활용되는 데 대한 반감은 물론 무슬림을 향한 종교적 거부감이 적지 않은 현실도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외교부는 난민 수송 작전에 앞서 종교계에 아프간인 수용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일부는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공로자'로 입국, 난민 지위 어려울 듯

김일응(오른쪽)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25일 카불 공항에서 한국행을 앞둔 한 아프간인과 포옹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김일응(오른쪽)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25일 카불 공항에서 한국행을 앞둔 한 아프간인과 포옹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391명에게 부여할 지위에서도 정부의 고민이 엿보인다. 이들은 ‘특별공로자’라는 다소 생소한 신분을 갖고 한국에 들어온다. 특별공로자는 한국의 공익에 기여한 외국인을 입국시키기 위해 주는 지위다.

정부는 일단 입국자들이 장기체류를 원할 경우 지원할 방침이다. 이미 90일간 국내에 머무를 수 있는 단기비자(C-3)를 발급했으며, 이후 장기체류가 가능한 비자로 일괄 전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비자가 만료되면 ‘인도적 특별 체류자’ 지위가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이날 국내에 거주하는 아프간인 434명에게도 당장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정을 고려해 같은 지위를 줬다.

출입국관리법상 인도적 체류자는 1년 기한인 기타 비자(G-1)를 부여받고 연간 단위로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 취업은 가능하지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일반 국민이 받는 기본적 생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정부가 아프간 조력자들을 사회보장과 생계비 지원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난민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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