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는 모두의 숙제다. 동물의 경우도 그러하다. 특히 나이 든 개의 다이어트는 쉽지 않다. 과체중인 폼피츠 승리는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안 좋은데, 살이 찌면서 다리에 더 무리가 왔다. 목 부위에 살이 찌면서 기도를 압박해서 숨 쉬는 것도 버겁다. 승리의 보호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다. 운동으로 살을 빼주려 하루에 두 번씩 산책시키는데 10분만 걸어도 승리가 낑낑거리고 떼를 쓴단다. 떼가 아니라 통증 때문에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안 좋은 관절로 무리해서 걸으니 상태는 악화되고,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통증이 심했으리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데, 수술 후도 문제였다. 워낙 과체중이라 재활도 쉽지 않아 보였다.
"먹는 것으로 체중 관리를 해야 합니다"라는 나의 말에 승리의 보호자는 "아니 더 줄여요? 개도 사람도 먹는 낙이 있어야 살지요!"라며 울컥했다. 사료만 먹이는 건 이미 실행중이었다. 이전 병원에서 사료만 그릇에 두고, 정 먹지 않으면 굶기라고 했다. 몇 년째 체중 관리 사료를 먹이는데 체중은 고작 몇백 그램 빠지고 줄지 않았다. 매번 실패하는 다이어트에 가족도 승리도 지쳐보였다. 분명 이번이 승리의 마지막 다이어트였다.
나는 승리가 사료와 물 이외에 무엇을 먹고 있는지 추적했다. 용변을 볼 때 주는 보상용 간식과 가끔 외출할 때 주는 작은 간식 한 덩어리, 양치용 개껌 등 소소한 먹거리를 파악했다. 개껌이나 육포도 살이 찐다. 체중을 빼는 동안 보상으로 주는 간식 대신 사료 한 알씩 주기로 했고, 껌은 중단했다. 외출할 때 간식도 끊었다. 체감되는 양은 적지만 각각이 모이면 체중을 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식을 건사료에서 습식캔으로 교체했다. 승리의 체중이라면 한 끼에 고작 사료 20알 정도 먹는다. 무조건 급여량을 줄이면 동물도 심리적으로 허망하다. 건사료는 적은 용량으로 높은 칼로리를 얻기 위한 용도다. 효율성은 높지만 수분이 적다. 습식캔으로 교체하면 수분 함유량이 많아 건사료와 같은 양을 먹을 경우 칼로리는 더 낮다. 덕분에 좀 더 급여량을 늘릴 수 있다.
습식캔이 비용 부담이 되지만, 한 달을 무조건 먹이기로 했다. 결과는 좋았다. 처음 2주간 승리는 600g이 빠졌다. 다음 2주는 400g이 더 줄었다. 보호자분은 매주 체중을 잴 때마다 신이 나서 문자를 보내셨다.
한 달 뒤 건사료로 다시 교체했다. 사료로 교체하니 20알 정도로 급여량이 줄었다. 줄어든 식사량 대신 사료에 양배추와 브로콜리를 함께 줬다. 다행히 승리는 양배추와 브로콜리에 알레르기가 없고 야채를 좋아했다. 알레르기가 없는 경우 야채를 함께 주면 씹는 재미도 있고, 먹는 시간도 늘어나서 포만감도 생긴다. 예전처럼 사료 20알을 몇 초 만에 호로록 삼키는 허무함은 이젠 없다.
중간에 먹는 간식도 양배추를 먹였다. 용변 보고 양배추 주는 재미도 생겼다. 체중이 줄면서 승리는 움직임이 늘었다. 꺽꺽거리던 소리도 줄고, 헉헉거림도 줄었다. 승리의 체중은 계속 줄었다. 보행이 좋아져서 수술도 가을로 미뤘다. 잘 걷고 잘 뛰는 모습에 수술할 마음이 당장은 없다고 하셨다. 승리의 마지막 다이어트는 성공이었다.
다이어트, 무조건 양을 줄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사료 외에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쉽다. 막상 눈앞에서 애절하게 보고 있는 개를 보면서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노력하고 있는데 효과가 없으면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수 있다. 지금 뚱뚱한 개와 함께 산다면, 무엇을 먹이는지 세세하게 적어보고 교체해보면 어떨까. 비싼 처방식 캔이 아니더라도, 적은 양을 천천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 넓은 그릇이나 쟁반에 사료를 주고 천천히 먹이는 것도 방법이다. 각자의 개성에 맞게 조금씩 방법을 찾아보자. 어차피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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