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질병까지 덮친 아프간, '카불 엑소더스' 구호품 끊겨

입력
2021.08.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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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분의 1 기아, 200만 아동 영양실조
카불 공항 통제로 의약품 공급 차질
WHO "美, 피란민 수송기로 구호품 실어와야"

2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국 해병대원이 아프간 어린이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2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국 해병대원이 아프간 어린이에게 물을 먹이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이 극심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스러질 위기에 처했다. 아프간을 떠나려는 엑소더스(대탈출) 행렬로 카불 공항이 통제되면서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국제구호기구는 지구촌에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다음달 초부터 아프간에서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프간은 수 년에 걸친 내전과 가뭄으로 식량 생산량이 40% 급감하면서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현재 4,000만 인구의 절반가량인 1,850만 명이 원조에 의존하는 빈곤층이고, 3명 중 1명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이 200만 명은 영양실조 상태다. 탈레반을 피해 고향을 떠난 실향민이 늘면서 식량난은 더 악화하고 있다. 올해 6개월간 식량 원조를 받은 사람은 무려 550만 명에 이른다.

WFP는 민항기 운항이 중단된 카불 공항 대신 우즈베키스탄과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인접국과 이어진 육로를 통해 식량 50%를 수송하고 있지만 필요량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앤드루 패터슨 WFP 아프간지부 부국장은 "아프간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고 곧 춘궁기가 시작된다"며 "도로가 눈에 덮이기 전에 식량을 빨리 창고에 비축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비축량은 2만 톤으로, 올해 말까지 버티려면 5만4,000톤이 더 필요하다. 페터슨 부국장은 "2,000만 명분 식량 확보를 위해 2억 달러(약 2,340억 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의약품도 동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보건 위기가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날 "당초 이번 주에 수술장비와 소아폐렴 치료제, 영양실조 지원품 등 의료구호품 500톤이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카불 공항 통제로 가로막혔다"고 밝혔다. 러처드 브레넌 WHO 아프간지부 비상대책국장은 "세계의 눈이 아프간을 탈출하는 사람들과 아프간에서 떠나는 비행기에만 쏠려 있지만, 우리는 뒤에 남겨질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보급품을 들여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WHO는 빈 수송기가 피난민을 태우러 아프간으로 향하는 길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들러서 의약품과 구호 물자를 실어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브레넌 국장은 "미국은 6개 민간 항공사를 고용해 아프간 난민을 이송하고 있지만, 작전 제약과 안보 문제를 이유로 구호품을 실을 수 없다고 한다"며 "항공기를 대피용으로만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미국은 카불 공항 말고 칸다하르, 잘랄라바드, 바그람 공군기지 등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우리에겐 그곳까지 갈 항공기가 없다"고 비판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도 이날 성명을 통해 아프간 전역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아동이 1,000만 명,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동이 소녀를 포함해 420만 명에 달한다고 진단했다. 폭력을 피해 피신한 여성과 아동은 43만5,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헨리에타 포어 유니세프 총재는 "탈레반은 유니세프와 구호단체가 안전하고 시의적절하게 아동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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